앉은 자리에서 책을 다 읽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어떤 단어로 정리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그 감정들을 굳이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아, 슬프다.’ 정도로 가늠할 수 있을 듯하다. 소설 속 김지영의 상황을 내가 너무 잘 이해할 수 있어서, 그 이야기에 공감하기 때문에, 내가 추측하고 예상한 이야기의 전개 방향으로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소설이 전개되어, 나는 슬퍼졌다고 말하고 싶다.

조남주의 장편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은 1982년 대한민국 서울시에서 태어난 서른네 살의 여자이다. 눈에 띄게 화려한 외모도 아니며, 언변이 뛰어나거나 특출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 김지영은 학창시절 어느 반에나 있음 직한 학생이자 아파트 옆 동에 살고 있을 법한 평범한 이웃이다. 소설은 세 살 많은 남편, 두 살 된 딸과 함께 서울 변두리의 대단지 아파트 24평에 전세로 거주하고 있는 김지영의 삶을 주서사로 다루고 있다. 연대기식으로 작성된 소설은 흡사 82년생 김지영의 인물 르포 같다는 생각이 든다.

김지영이 중학생 때의 일이다. 남녀공학의 교복 규정은 여학생들에게 엄격했다. 교복 치마는 무릎을 덮어야 하고, 엉덩이와 허벅지의 굴곡이 드러나면 안 된다. 얇은 하복 셔츠 속에는 흰색 러닝셔츠를 반드시 입어야 한다. 면티, 색이 있거나 레이스가 있는 러닝셔츠는 안 된다. 브래지어만 입는 것은 더더욱 안 될 일이다. 그에 반해 남학생들은 바지폭이 너무 넓거나 좁게 수선한 것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눈 감아 주었다. 하복 안에 러닝셔츠도 입고 흰 면티나 회색, 검은색 티를 입기도 했다. 이에 대해 선도부교사는 “남자애들은 쉬는 시간 10분도 가만히 안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김지영은 생각한다. 불과 1년 전인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자신을 포함한 여학생들 또한 “쉬는 시간 10분도 가만히 안 있”던 아이라는 것을 말이다. 살색 스타킹에 굽이 딱딱한 구두를 신고, 무릎 라인의 교복 치마를 입는 순간, 쉬는 시간 동안 ‘조용히’, ‘가만히’ 앉아있는 ‘여학생’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후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 여자신입인 김지영은 남자직원들의 모닝커피를 타고, 회식 자리에서 수저와 물컵을 보기 좋게 세팅한다. 타회사와의 미팅 뒤풀이 자리에서는 부장급 남자상사 옆에 앉아 맥주를 따르고, 안주를 집어 준다. 결혼 후에는 맞벌이 부부로 일하지만 임신과 출산을 거치면서 제 꿈이었던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다. 그리고 홀로 아기를 키우며 ‘독박육아’를 하던 김지영은 자신과 같이 1,500원짜리 커피를 마시고 있던, 생전 처음 보는 남자들에 의해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는 맘충”이 되어버린다.

이처럼 소설은 김지영이 일상생활에서 ‘여자’이기 때문에 겪어야만 했던, 그리고 겪고 있는 크고 작은 차별과 폭력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아주 오랫동안 관습화되어 그것이 차별이나 배제, 폭력이라는 생각마저 들지 않게 된, ‘원래’부터 그런 일이라고 김지영을 비롯한 대한민국 여성들이 수긍하게 되어 버린 일련의 일들에 대해서 말이다. 은밀하게 작동되던 폭력이 이제는 고착화되어 하나의 시스템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마저 품게 된다. 하지만 ‘원래’부터 그런 일이란 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처음부터’ 그랬다면 그 ‘처음’은 언제부터일까. 그것을 시작한 이는 누구일까. 소설 속 김지영을 비롯해 이 땅의 많은 여성들이 이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만, 어느 것 하나 명확한 답을 듣지 못한다. 오히려 이런 질문과 비판, 반박에 되돌아오는 것은 ‘따지기 좋아하는 여자’라는 비아냥과 ‘여성 혐오’일 뿐이다.

나는 이 책을 주변의 여성들에게 권하고 싶다. 함께 읽고 각자의 생각과 의견들을 풍성하게 나누고 싶다. 그 자리에는 책을 읽지 않은 여자들도 얼마든지 참석할 수 있다. 그녀들은 아마 책을 읽은 사람들 못지않게, <82년생 김지영>에 대해 자세하고 생동감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김지영’이기 때문이다. 그 사실이 나를 더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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