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신고 나온 낡은 구두가 기자들의 눈에 띄었다. 낡은 구두를 신은 현직 대통령과 패션 외교라고 불릴 만큼 화려한 패션아이템을 선보였던 전직 대통령이 비교되는 순간이었다. 특히 그 구두가 ‘아지오(AGIO)’라는 청각장애인들이 만든 수제화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고, 업체가 폐업했다는 소식에 다시 공장 문을 열면 안 되겠냐는 응원의 메시지도 쏟아졌다. 5년이나 된 낡은 구두를 신고 다니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일각에서는 ‘서민 코스프레’라며 곱지 않은 시각을 보내기도 했다.

분명 대통령의 구두는 서민 코스프레다. 원래 패션은 자신의 모습이 남에게 어떻게 보이기를 바라는 의도를 담은 코스프레이기 때문이다. <장화신은 고양이>에서 장화는 고양이가 임금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펼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한 귀족 코스튬이다. 마찬가지로 <신데렐라>에서 유리 구두는 신데렐라를 아름답고 고귀한 여인으로 보이기 위한 코스튬이다. 이처럼 신발은 고대로부터 신분을 상징하는 중요한 패션 소품이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 노예의 맨발은 가장 미천한 신분을 나타내며, 프랑스 루이 14세의 10㎝가 넘는 붉은 하이힐은 지존의 위치를 나타냈다. 루이 14세는 키가 160㎝ 밖에 안 되는 단신이었지만 하이힐과 커다란 가발을 이용해 자신의 키를 잔뜩 늘렸다. 국왕은 모두를 내려다보는 자였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낡은 구두는 더 이상 서민의 신분이 아님에도 항상 서민을 생각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마음의 표현이다. 이를 두고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전혀 없다. 대통령이 구두를 통해 전달한 메시지와 실제 행동이 다를 때 비난하는 것이 옳다.

오늘날에는 신발이 이러한 상징성만 지니는 것이 아니라 공학적 기능까지 지니고 있다. 1830년대 리버풀 고무회사에서는 신발 바닥에 고무를 덧대 스포츠화를 대량으로 생산했다. 고무를 덧댄 모양이 배의 만재흘수선을 닮아서 플림솔(Plimsoll shoe)이라고 불렸다. 고무라는 혁신적 재료를 도입한 리버풀 고무회사는 자동차의 신발인 타이어를 만드는 던롭이 된다. 이렇게 시작된 재료의 혁신은 이후 플라스틱, 합성섬유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기에 이르렀고, 이제는 신발에 공학기술까지 더해지고 있다.

2014년에는 도로시의 마법 구두처럼 원하는 곳으로 주인을 데려다주는 재미있는 기능을 가진 ‘리챌(LeChall)’이라는 스마트 신발이 등장했다. GPS와 햅틱 기술을 활용해 원하는 곳으로 길을 안내하는 신발이다. 리챌은 시각장애인이나 치매 노인뿐 아니라 연인들끼리 특별한 장소로 안내해 이벤트를 벌이는 등 다양한 방면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구글에선 ‘수다쟁이 신발(Talking Shoe)’은 단순히 길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신발에 부착된 센서가 스마트폰과 블루투스로 연결되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신발 주인에게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신발은 인공지능 비서나 다름없다.

이렇게 IT기술과 융합되어 신발에 아무리 많은 기능이 첨가된다고 하더라도 역시 신발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발을 보호하고 편안하게 걷게 해주는 것이다. 발은 26개의 뼈와 신경, 인대가 모여 있어 제2의 심장으로 불릴 만큼 중요한 신체 부위이다. 사실 발은 인류가 2족 보행을 하게 되면서 많은 부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따라서 건강을 생각한다면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편안한 신발을 골라야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발을 보호하기는커녕 강제 규정으로 오랜 시간 하이힐을 신게 만들어 근무자의 발에 많은 부담을 준다. 심지어 과도한 하이힐 착용으로 발톱이 빠져 피로 물든 발 사진이 공개되면서 해당 업체는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이힐의 강제착용은 현대판 전족이나 다름없다. 신발은 발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주인을 옭아매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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