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이 돌아왔다. 봄이라기엔 이전보다 덥고 미세먼지도 기승을 부리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꽃 피고 햇볕이 내리쬐는 봄이다. 이 계절이 되면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웨딩 산업에 발맞춰 지금쯤이면 많은 신랑·신부가 잘 짜인 춤사위처럼 만들어진 우리나라 특유의 결혼 준비를 정신없이 헤쳐나가고 있을 것이다. 결혼 준비하면 스·드·메라고 하니, 이 절차를 따라 신랑·신부는 스튜디오를 정하고, 드레스를 입어보고, 메이크업 실을 정하러 떠난다.

결혼식 날까지 신랑이 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봐서는 안 된다는 서양과는 달리 드레스를 신랑·신부가 함께 고르는 우리나라에서는 신부가 신랑 앞에서 결혼식 전까지 대략 25벌 정도의 다른 드레스를 입어보는데, 이 모든 드레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흰색이라는 것. 요즘에 들어서는 결혼식에서 신부가 흰옷을 입는 것이 너무 당연하여, 결혼식에 가는 하객이 흰옷을 입고 가면 예의가 없다고 질타를 받고는 한다. 그렇다면 왜 신부는 결혼식에서 흰옷을 입는 것인가? 기원도 알 수 없는 서양의 전통일 뿐이니 남들 따라 하면 되는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는 사실 최신(?) 유행일 뿐으로 신부들이 흰 드레스를 입은 지는 이제 겨우 170년밖에 되지 않았다. 요즘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과거의 신부들이 결혼식 때 입는 옷은 그야말로 다채로웠다. 옷의 다량 생산이 불가능했던 과거, 평민 집안에선 겨우 한 번의 이벤트를 위해 새로 지어 입은 옷을 이후 다시는 안 입는 것은 지나친 사치인지라 갖고 있는 옷 중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결혼을 했다. 일반적으로 정략결혼을 했던 부유한 귀족 집안에선 결혼식을 통해 부를 과시하고자 하였고 신부들은 금실과 보석으로 치장된 화려한 드레스를 입었다. 1558년,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가 프랑스의 왕세자와 결혼하며 흰 드레스를 입는 등, 흰 드레스를 입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으나 흰옷은 상복으로 입기도 했던 만큼, 아무래도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취향이었던 것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유행을 선도한 이는 바로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타고난 혈통으로 왕위에 오른 만큼 주변에 부를 과시하기보다는 자국 산업의 발전을 꾀하고자 런던 실크와 호니튼 지방의 레이스를 이용한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만들어 입었다. 드레스를 강조하기 위해 머리에 다산을 기원하는 오렌지 꽃 장식과 다이아몬드 귀걸이, 목걸이 정도의 튀지 않는 장식만을 하고 신랑이 준 사파이어 브로치를 착용했다. 당시 기준으로는 단순했던 드레스를 입은 빅토리아 여왕은 지금 보면 신부답고 예뻐 보이지만 과거에는 여왕이 너무 수수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자국 산업에 보탬이 되고자 했던 여왕의 마음은 변함이 없어서 이후 자녀들의 세례식이나 결혼식에서도 호니튼 레이스를 계속해서 사용했고 국민의 호응을 받았다.

빅토리아 여왕의 웨딩드레스는 이후 몇몇 신부들이 따라 하기 시작했고, 빅토리아 여왕의 딸과 며느리 역시 흰 웨딩드레스를 입으면서 ‘신부=흰색’의 공식이 생겨나 고정되었다. 여왕과 공주들이 흰 드레스를 입기 시작하니 이제는 순수하고 깨끗한 흰색이야말로 새로운 삶을 향해 떠나는 신부에게 가장 적합한 색이라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게 신부의 하얀 드레스는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을 넘어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 무려 170여 년간 유행하는 신부의 상징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매우 당연히 생각하는 전통과 문화 중엔 이처럼 얼마 전에야 생겨난 것도, 현대에는 적용되지 않아야 할 악습도, 혹은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는 달리 잘못 알려진 것들도 있다. 전통과 관습을 따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만약 관습이 나를 불행하게 한다면 이에서 벗어나는 것도, 전통과는 다른 본인의 개성을 지키고자 한다면 그 마음을 아끼는 것도 똑같이 중요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최근에는 이 ‘유행’에서 벗어나 자신이 좋아하는 색의 옷을 입고 결혼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 영원히 아끼고 배려하며 행복하게 함께 살고자 하는 그 마음만 지킨다면야 입고 있는 옷의 색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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