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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길, 그 험난함에 대하여
  • 함규진 서울교육대 윤리교육과 교수
  • 승인 2017.05.15 23:19
  • 호수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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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촛불민심’에 부응하여 과감한 개혁을 해 주기를 그에게 바라고 있다. 나라가 살아남고 발전하기 위해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만 매우 어렵고 위험한 작업이기도 하다. 역사 속에서 개혁을 추진했던 지도자들은 어떻게 성공하고 실패했을까. 민주적으로 뽑힌 대통령과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공론을 중시하는 풍토에서 명목상 절대권력자였으나 좀처럼 마음대로 권력을 쓸 수 없었던 옛 임금들의 사례를 보자.

조선 제4 대왕 세종(재위 1418~1450)은 완벽한 성군이자 성공한 개혁군주로 불린다. 한글을 창제하고,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세제를 개혁했으며, 조선 사회를 성리학적으로 재편했다. 그런 개혁 성공의 배경에는 부왕인 태종의 역할이 컸다는 말이 있다. 힘 있어 보이는 세력을 모조리 제거해서 세종이 거침없이 뜻을 펼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세자 수업도 제대로 받지 못한 젊은 왕이었다. 신료집단 전체에 리더십을 세우지 못하면 정권은 유지할 수 있어도 개혁은 어렵다. 그래서 세종이 쓴 전략은 ‘큰 것은 맡기고 디테일로 승부한다’는 것이었다.

국정의 큰 가닥은 황희, 허조, 맹사성 등 유능한 재상들에게 맡기고, 스스로는 ‘윤대’를 비롯한 특별 경연을 통해 중하위급 관료들, 기술직들과 끊임없이 소통했다. 그래서 고위관료들은 잘 모르는 실무의 ABC를 꿰고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시의적절한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고, 고위관료들이 개혁에 반대하고 나서면 실무 지식을 들이대며 입을 다물게 할 수 있었다. 한글 창제를 반대하는 최만리에게 ‘네가 음운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 자모(子母)가 모두 몇 개인지 알고 있느냐?’며 반박한 사례도 그런 맥락이다.

한편 조선 제15 대왕 광해군(1608~1623)은 훨씬 입지가 불리한 상태로 왕이 되었다. 서자에 둘째였던 그는 부왕이 뒤늦게 들인 중전이 ‘적장자’를 낳음으로써 옥좌 자체가 위태로웠다. 4색 당파 가운데 북인만이 그를 지지하고 있을 뿐이기도 했다. 광해군이 찾은 해법은 ‘대통합정치’였다. 남인인 이원익, 이덕형, 서인인 이항복 등 ‘야당 원로들’을 정승에 앉히고, 여당 격인 북인은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등 언론과 감찰을 담당하는 부서에 배치했다. 광해군이 초기에 이룩한 대동법 실시, 호패법 실시, 동의보감 간행 등의 개혁들은 모두 이 대통합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권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 여긴 형 임해군, 동생 영창대군의 숙청과 의붓어머니 인목대비의 폐비는 대통합을 파탄 냈으며, 광해군은 북인에게만 의지하게 되었다. 그나마 추진했던 중립외교라는 개혁은 북인에게조차 지지를 얻지 못해, 결국 개혁도 실패하고 정권도 잃어야 했다.

조선 제22 대왕 정조(재위 1776〜1800)는 세종을 본받아 개혁을 이루려 했다. 다만 실무를 익히기보다 성리학 이론을 파고들었다. 당시는 실용이 천시되고 공리(空理)와 예법이 중시되던 시대라서, 리더십을 세우려면 학문적으로 뛰어남을 보여야 했기 때문이다. 대신 가장 신임하는 홍국영에게 여러 부처의 실무책임자를 겸임시켜, 부처가 돌아가는 사정을 꿰면서 조직의 아래쪽에서 조직을 장악하려 했다. 그러나 이 방법은 홍국영이 ‘비선 실세로서 국정을 농단한다’는 비난을 한몸에 받고 퇴진하면서 실패했다. 그 뒤 정조는 탕평책을 쓰는 한편 규장각과 초계문신 제도로 ‘친위집단’을 양성해서 개혁 주도세력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이 또한 이승훈, 이가환, 정약용 등이 천주교도라는 이유로 제거되면서 실패로 끝났다.

조선 제26 대왕 고종(재위 1863〜1907)은 세도정치의 적폐를 청산하고 시대 변화에 맞춰 개화를 추진한다는 중대한 개혁과제를 떠안았다. 그러나 아버지 대원군이 태종과는 반대로 아들의 옥좌를 늘 위협했고, 개화를 ‘스스로 오랑캐가 되겠다는 것’으로 보던 유림에게도 외면받았다. 애써 키운 개화파도 갑신정변으로 서로를 파괴했다. 결국 중전 민씨 일가에게 의지해 국정을 운영해야 했던 고종은 개혁에 필요한 리더십을 세우지 못했고, 국권도 지켜내지 못했다.

왕들의 시대에 비해 오늘날은 국민의 힘이 있다. 개혁을 추진하며 현실을 바로 보고 지혜롭게 처신하는 지도자도 중요하겠지만, 그의 개혁 의지를 북돋아 주고 잘못 판단했을 때 따끔히 야단쳐 주는 국민의 힘과 의지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함규진 서울교육대 윤리교육과 교수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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