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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대통령에게 권하는 퀴어 영화
  • 강소원 영화평론가
  • 승인 2017.05.13 23:18
  • 호수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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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브로크백 마운틴>이 상영되는 극장 객석의 여기저기서 새어 나왔던 웃음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일부 관객의 웃음은 두 주인공의 사랑이 묘사되는 진지하고 절절한 순간마다 폭력적으로 끼어들어 가슴에는 로맨스에 찬물을 끼얹고 관객의 감정적 몰입을 방해했다. 영화사상 가장 비극적인 멜로드라마 중 하나로 꼽힐 만한 이 영화에 웃음이 끼어든 까닭은 단순하다. 주인공들이 동성애자였기 때문이다.

실은 전혀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었다. 웃음이라는 부적절하고 터무니없는 반응은 혐오와 두려움이 뒤섞인 동성애 공포증에서 비롯된 일종의 방어기제이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의 이성애적 정체성은 타인의 진심을 지나친 농담으로 바꿔놓아야만 간신히 버틸 수 있는 연약하고 불안정한 지반 위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우리도 많이 달라졌다. 작년 <캐롤>을 상영하는 극장에서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훌쩍이는 관객은 있었지만 그 공감이 성정체성에 대한 의혹을 불러오지는 않았다. 그사이 우리는 꽤 많은 퀴어 영화를 보았고 그만큼 문명화되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착각인지도 모른다. 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따로 있다? 차기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인물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이 말은 씁쓸한 뒷맛과 함께 돌아왔다.

“동성애 반대하십니까?” “그럼요” 보수(실은 극우) 대통령 후보가 던진 질문에 진보 성향의 후보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한다. 그 순간, 문재인 지지자들의 한숨 소리를 환청으로 들었던 듯하다. 심상정 후보만이 ‘동성애는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는 매우 상식적인 발언을 내놓았다. 이 말이 상식인 것은 뒤집어보면 안다. ‘당신이 이성애자인 것을 반대한다’는 말은 얼마나 우스운가. 동성애 찬반 이슈가 막바지 대선판을 흔드는 광경 안에는 영화가 조금씩 나아가는 동안 더 큰 격차로 저만치 뒤처져 있는 현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제 문재인은 우리의 대통령이다. 그가 이끄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는 그 어느 정권 때보다도 강하다. 하지만 인권 변호사 출신인 그의 인권 감수성에 성 소수자는 배제되어 있다는 점은 아쉽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계몽의 차원에서 여기 두 편의 퀴어 영화를 권해드릴까 한다.

우선 최근에 본 한국 다큐멘터리 <위켄즈>의 한 장면이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에서 출발한 게이 합창단 G-Voice가 쌍용차 고공 농성장으로 응원 공연을 갔다. 야유받고 거부당할까 봐 잔뜩 긴장하고 무대에 선 G-Voice의 공연에 노동자 아저씨들의 열렬한 환성이 쏟아진다. 3년 뒤 쌍용차 노동자들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 문화제’에 응원공연을 가는 것으로 그에 답한다. 그리고 “함께 살자!”고 외친다. 검게 그은 노동자 ‘형님’들과 곱게 화장한 청년 동성애자들이 나눈 그 연대는 정치인들의 사회적 합의 핑계를 넘어서 아름다운 미래를 예고하는 노래이자 축포였다.

비슷한 상황은 지금 상영 중인 <런던 프라이드>에도 등장한다. <위켄즈>에서 노동자와 성소수자의 연대는 영화의 일부분이지만 <런던 프라이드>에서 그것은 메인 플롯이다. 1984년 대처 집권기에 있었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는 광산 파업 노동자와 성소수자의 연대가 축제처럼 묘사된다. 그들은 “연대여, 영원하라”고 외쳤다. 무려 33년 전 영국에서 있었던 약자들의 연대가 2010년대 한국에서 재연되다니 놀랍다고 해야 할까, 씁쓸하다고 해야 할까.

“성별, 성정체성, 성적 지향으로 차별받는 사람이 없는 그런 사회를 꿈꾼다” 올해 백상예술대상에서 <아가씨>로 감독상을 받은 박찬욱은 이런 수상소감을 남겼다. 그건 꿈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꿈이다. 기대만큼 불안도 있지만, 노동자,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의 삶 앞에 놓인 향후 5년은 적어도 지난 10년과는 다를 것이라고 믿는다. 이제 날이 밝으면 약자들의 인권을 위해 싸워온 신임 대통령의 임기 첫날이 시작된다. 누구도 존재를 부정당하지 않는 새로운 시대를 희망하며 이 글을 썼다. 

강소원 영화평론가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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