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부터 인권이 설 자리는 없었다. 민주주의라는 열망 덕에 봄이 왔다 생각했건만, 대통령이 되겠다는 이들은 군내 성소수자 ‘색출’이라는 반인권적 행위에 침묵을 유지했다. 진영논리라는 조악 따위가 입을 열게 했고, 그제야 저마다의 인권을 찾기 시작했다. 금기마냥 쉬쉬하던 우리사회의 서글픔은, 후보들의 입장발표에서 더욱 절실해졌다. 설전의 중심이 된 이는, 이것이 찬반의 대상이 아니라면서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라며 이해해주길 바랐다. ‘소수에게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며 다수를 지킨다’는 정치적 선택이었다. 진저리나는 정치공학이 판을 치는 와중 많은 이들이 20년 전 자구를 되새긴 건 자조에 가까웠다. 자화상은 달라진 바 없었고, 우리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촛불이 워낙 밝았던 탓일까? 눈이 멀었는지, 해명이라 내놓은 활자에도 인권은 부재했다. ‘군대 내 동성애 반대’는 동성애가 성폭력으로 이어질 거라는 막연한 혐오이자, 성폭력에 노출된 여군들마저 방관하게 될 지독한 편견이다. 인권이 우선이었다면 ‘군 내 성폭력 및 영내 연애 금지’ 정도가 적절했을 터였다. ‘전통적 결혼의 가치가 소중’하다는 말 역시 마찬가지다. ‘소수에 대한 차별에 반대’한다고 곁들였는데, 그 자체가 모순이자 차별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한 꼴이다. ‘동성혼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말한 그였고,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그였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쌓아온 인권은, ‘인권 변호사’의 말실수에 자리를 잃었다. 그렇기에 당사자들의 분노는 말릴 도리가 없을 테다. 그의 부족을 두고 ‘실수’냐 ‘실제’냐를 가늠하는 건 온전히 이들에게 맡겨야 할 일이다.
 
우리가 보지 못했을 뿐, 이들은 늘 저항해왔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처음 시도한 것이 2007년이다. 지옥에 갈 거라 저주하는 자들과의 처참한 싸움을 10년간 이어왔다. 자신을 감춰야 살아남을 수 있는 이들이고, 차별과 혐오를 받아도 그 상처를 표현하지 못하는 이들이다. 그런 이들이 싸움터에 나왔다. 그만큼 절박했을 거고, 또 그만큼 힘들었을 거다. 때문에 필자는, 이들을 내려다보는 다수의 권위적 시선에 반대한다. ‘소수자가 벼슬이냐’며 분노를 객쩍어하는 자들에 반대한다. 또 ‘이해할 수 없지만(혹은 싫지만) 차별에는 반대한다’는 궤변에 반대한다. 한 문화예술인의 언사에서 느낀 기시감 탓에 더욱 그렇다 ‘난 지난 대선에서 당신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그런 내가, 이제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당신과 당신 지지자들의 블랙리스트에 올라야하는가?’라는. 추악한 정권을 몰아낸 게 불과 수십일 전이다. 
 
맹목적인 소수자 혐오에 대한 공적 인물의 굴복은, 우리에게 인권이 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 답 역시 수일 전의 광경에 존재했다. 바로 차별에 반대한다는 것. 정체성을 이유로 혐오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싫더라도 드러내지 않아야 하고, 드러냈다면 이를 부끄러워해야 한다. 역사가 말해준다. 흑인이 그렇고, 유태인이 그러며, 조센징이 그렇고, 여성이 그렇다. 스스로 행한 차별과 혐오를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부끄러움에 민감해지는 것이, 인권에 있어서는 가장 큰 진보다. 스스로 경계하는 사회에 닿았을 때, 비로소 인권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다름은 아름답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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