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얼마 안 돼서 사촌 동생을 만난 적이 있다. 사촌 동생의 고등학교에서는 4월 15일에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었다고 한다. 세월호가 뒤집히기 전날, 그 배에는 내 사촌 동생이 타고 있었다. 만약 그때 사촌 동생의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하루 더 늦게 갔었다면, 그날 그 배에 타고 있었다면- 하는 상상만으로도 눈앞이 아찔해진다. 지난 3년간 진도 팽목항에서 오매불망 자식을 기다리던 유가족은 나의 가족이었을 수도 있었고, 내가 될 수도 있었다.

사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고는 절대 먼 이야기가 아니다. 고리원전의 말썽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고, 부산지하철 1호선 전동차의 약 30%가 노후화됐다. 이곳은 언제나, 여전히 안전하지 않다. 이 와중에 사고 대책은 대책이 없어 보인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은 가족을 잃었고 몇 명은 참사 3년이 다 되도록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근 3년 동안 특별조사위원회가 꾸려졌다 해체됐고 사건 관련자를 처벌하고자 했지만 이마저도 정부는 도와주지 않았다.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배를 방조한 이 비정상적인 구조로 인해, 그 무게는 유가족이 고스란히 지게 됐다. 이뿐이랴. 내구연한 규정을 없앤 덕분에 30년 넘은 전동차가 번듯이 승객을 태우고 있지만, 안전사고 발생 시 책임은 기관사 개인의 몫이다. 고리원전 사고 대책이 있을 리 만무하다. 이제는 국가의 조치를 바라기보다 그냥 스스로 조심하며 최대한 사고를 안 당하는 편이 더 속 편하다.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것조차 의지대로 된다고 믿어야 하는 현실이다.

박근혜 정부의 안전정책에 불신은 이미 팽배한 상태. 그러던 중 최근 세월호 선체 인양과 대선 기간이 맞물리면서 대선주자들이 안전정책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사실 대선주자의 공약을 곧이곧대로 믿는 순진한 시대는 지났다. 예컨대, 이명박 전 대통령은 ‘근로기간 단축’과 ‘산업재해 감소’ 정책을 내세웠다. 그러나 막상 근로감독을 받은 기업은 극히 적었고, 2007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 산업재해 사건이 터졌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도 ‘안전한 대한민국’을 말했지만 역시 말 뿐이었다. 안전 규제는 계속해서 완화됐고 불법업체에 파견을 합법화하는 ‘파견법’의 국회 통과를 주문하는 등 ‘불안전한 대한민국’ 만들기에 주력했다. 이렇듯 이미 겪어봤기에 대선주자들의 안전정책 공약이 표심을 얻기 위한 단발성 공약으로 그치리란 의심이 드는 건 당연지사다.

현재까지 거론된 대선주자들의 안전정책 공약은 ‘재난 안전관리 컨트롤타워 마련’, ‘청와대 위기관리센터 복원’, ‘기초생활보장제도 보완’ 등이다. 세월호 사태가 있고 나서야, 이미 한 번 물이 엎질러지고 나서야 나온 정책치고는 아직 많이 부실해 보인다. 정식으로 후보자 공약이 나오기 전이니 그렇다 치겠다. 어쨌든, 이미 있는 정책이나 누군가 이미 말한 정책들을 그럴싸하게 포장해 반복하는 일은 지양돼야겠다. 분명히 과거보다는 더 큰 진일보가 필요한 시점이다. 진심으로 필자는 안전한 사회를 바란다.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적은 사회인 것도 중요하고, 사고가 나더라도 피해자가 억울하지 않은 사회이길 바란다. 그러니 염원해본다. 안전정책을 내려거든 제대로 내서 확실히 지키는 그런 대통령이 나오길. 그래서 ‘안전한 나라’에서 ‘안전한 시민’으로 지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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