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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사가 지나온 길은 겨울이었다“겨울같은 요양보호사의 현실에도 볕이 들길”
  • 황연주 기자
  • 승인 2017.04.10 05:44
  • 호수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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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진짜 좋은 일 하시려고 그러네요”
약 10년 전 요양보호사를 하려 한다는 학부모님께 내가 한 말이었다. 툭 튀어나온 말이었다. 당시 어린이집 교사로 10년을 일했지만 내 천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던 시기였다. 아이를 데리러 온 어머님이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고 오는 길이라고 했을 때, 왜 그리 좋게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그때 내가 한 말, ‘좋은 일’이라는 단어에 꽂힌 건지 뭔지 어린이집 교사를 그만두고 요양보호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내게는 정말 좋은 일로 보였으므로.“이렇게 젊은데 왜 네가 여길 와? 여기는 네가 제일 마지막에 오는 곳이야”서른세 살. 요양보호사가 되고 나서 들은 말이다. 처음엔 그 말이 뭘 뜻하는지 몰랐다. 마지막에 오는 곳이라니? 나는 그저 어르신 분들을 돕고 싶은 것뿐인데.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거 다 내가 내는 세금으로 하는 거 아냐? 저거 나 아니면 돈도 못 받을 텐데!”
이런 말을 듣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어디서 국가 돈을 받고 오면서 음식을 이렇게 갖고 와? 고발할 거다!”
어떤 어르신은 음식이 본인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화를 냈다.
상처는 쌓여만 갔다. 그래, 그 분의 병인걸. 어쩔 수 없지. 그렇게 참고 넘어가면서도 그 순간순간은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성희롱을 당할 때도 있었다. 이 분이 정말 힘이 없어서 나를 붙잡는 건지, 성적인 의도를 가지고 나를 더듬는 건지, 그 차이는 너무나도 명백했다. 어르신의 손이 가랑이 사이로 들어온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정말 내가 이 일을 계속해야 할까?

CCTV 영상을 보던 나와 다른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은 왈칵 눈물을 터뜨렸다. 젊은 남성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한 어르신에게 무차별하게 폭행당하고 있었다. 어르신은 사정없이 선생님의 양 뺨을 때렸다. 선생님은 어르신을 밀치지도 못하고 그저 맞고만 있었다. 한 번은 그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그때에도 선생님은 어르신에게 맞고 있었다.
“내가 지금 이렇게 맞아야 하겠습니까?”
울분을 토하는 목소리였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
“선생님, 혼자 있지 마시고 다른 사람들하고 다 부르세요”
다른 층에 있는 직원을 요청해서 어르신을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본래 폭력성이 짙었던 어르신이었다. 만약 인력이 많아서 한 명이 어르신을 돌보지 않았다면, 두 명이 어르신을 돌봤다면 안 건드렸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 선생님은 결국 일을 그만뒀다.
“있을 때 잘하자”
얼마 전까지 함께 했던 어르신 한 분이 돌아가시고 난 후 식사시간에 나온 이야기였다. 나와 주변의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밥이 매끄럽게 넘어가지 않았다. 평소 나를 힘들게 했던 어르신이었는데 어째서인지 마음이 더 아파왔다. 조금 더 잘해 드릴걸. 그런 생각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식사를 끝내고 어르신들을 보러 갔다. 다리를 펴지 못해 높게 굽히고 계시는 어르신. 지난 기억이 없어 웃기만 하시는 어르신. 그 분들을 보면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이불을 덮어드리고 손을 꼭 맞잡았다.
일을 하다 보면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끝내 관두지 못하는 것은 이 일에 대한 소명의식이나 보람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부닥친 상황이 그리 좋지 않고, 그에 가중되는 부담은 커져만 간다. 그렇기에 어르신들과 함께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더 나은 환경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황연주 기자  march1968@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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