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은 미국의 비트 세대를 대표하는 시인 앨런 긴즈버그(A. Ginsberg)가 사망한 지 10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는 미국의 유대계 시인으로서 전후 미국의 위선을 통렬히 탄핵하였다. 그의 유명한 장시 <울부짖음 Howl>(1955)는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나는 우리 세대의 최고의 지성들이 광기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보았소. 미친 듯이 벌거벗고 굶주리는구나. 지친 몸을 끌고 분노를 폭발할 곳을 찾아 흑인가를 방황하는구나. 천사 머리의 비트 족들은 별빛 가득한 밤에 고대의 성스러운 하늘과의 연대를 기대하지만 오직 기계의 움직임만 가득하니···.’

시인이 젊은 시절에 경험한 1950년대의 미국은 모순으로 가득 찬 사회였다. 2차 대전에서 승리한 국가로서 세계의 자유를 수호한다고 자부하였지만 그 자유는 백인 중산층들만을 위한 것이었다. 수많은 흑인은 빈민가에서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월남전을 감행하여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초래하게 된다. 시인은 위선적 사회를 고발하였다. 분노하였고 세계의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갈망하였다. 뉴욕 북부의 농장을 빌려 개최한 우드스탁 (Woodstock) 콘서트는 시인의 시대정신을 대변하였다. 열악한 개최 조건에도 불구하고 구름처럼 몰려든 수십만 명의 젊은이들은 3일 내내 평화를 염원하며 청춘의 낭만을 마음껏 구가했다.
긴즈버그 사후 10년이 지난 오늘 그 젊은이들의 시간을 되돌아본다.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무엇을 꿈꾸는가? 자유와 젊음을 위해 그리고 정의를 위해 ‘고대의 성스러운 하늘과의 연대’를 꿈꾸는가? 물질적 가치만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지는 않는가? 취업, 경쟁, 성취, 소유만이 전부가 되었다. <나는 가수다> 에서부터 시작해서 <K-Pop 스타>, <판타스틱 듀오>에 이르기까지 문화예술 공연에도 승자만이 생존하는 경쟁체제가 도입되었다. 무한경쟁 대신에 함께 낭만을 노래할 수는 없는가? 시인의 또 다른 시 <루르지역 Ruhrgebiet> (1979)을 보자.

 

너무 많은 공장들/ 너무 많은 음식/ 너무 많은 맥주/ 너무 많은 담배

너무 많은 철학/ 너무 많은 주장/ 하지만 너무나 부족한 공간/ 너무나 부족한 나무

너무 많은 경찰/ 너무 많은 컴퓨터/ 너무 많은 가전제품/ 너무 많은 돼지고기

너무 많은 커피/ 너무 많은 담배연기/ 회색 콘크리트 지붕들 아래/ 너무 많은 복종

너무 많은 뚱뚱한 배/ 너무 많은 양복/ 너무 많은 서류/ 너무 많은 잡지 ...

 

자본주의 문명사회를 비판하는 시다. 문명으로 모든 것이 풍요로워졌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행복해졌는가? 욕망의 경쟁 구도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소외되어 있지는 않은가?

이제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5월 9일이다. 선거를 통해 우리 모두가 함께 낭만을 노래하는 새 시대가 열리기를 기대한다. 

인성기(독어독문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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