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에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여성혐오는 공기와도 같다. 누구나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뿐만 아니라 과거부터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 표현까지 대중매체에 쉽게 쓰이고 시민들에게 전달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거나, 문제를 지적한 이를 ‘프로불편러’라며 여성혐오에 대해 부정하고 있다. 대중매체에서 등장하는 여성혐오 표현에는 어떤 것이 해당하는 것일까?

 

여성이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대중문화에는 여성혐오 표현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

남성위주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TV속 여성은?

최근 방송에서 채널을 몇 번 돌리기만 해도 여성혐오 표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30~40대의 일명 ‘아재’ 출연자가 등장하는 <아는 형님>이 대표적이다. 남성 패널들이 여성 게스트들에게 수위가 지나친 △성적 농담 △외모 품평 △여성 흡연 조롱 등을 일삼고 있기 때문이다. 한 출연자가 장래희망이 사육사였다는 여성 출연자를 향해 ‘뭔가 야하다’고 반응하거나 여성 출연자에게 선물로 빨간색 종이컵 비키니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한 출연자는 ‘언니, 이거 나만 불편해?’라며 여성혐오 표현에 목소리를 드러내는 사람을 조롱하기도 했다. 손남훈 문학평론가는 “소수의 여성출연자에게 다수의 남성 패널들이 질문을 던지는 구조부터 남성 중심적 시각이 내재된 프로그램”이라고 지적했다. 여성 출연자에 대해서도 ‘담배 피고 왔냐’며 여성 흡연자에 대해 조롱하는 듯한 멘트도 일삼고 있다. 이에 대해 손남훈 문학평론가는 “여자는 담배를 피면 안 된다는 편견이 이미 내포되어 있고 이는 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각이다”고 전했다.


<프로듀스 101>에서는 수동적인 여성성을 강요하며 왜곡된 여성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웹매거진 <아이즈>에서는 <2016 여성혐오 엔터테인먼트> 도서를 통해 대중매체 속 여자 아이돌은 우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했다. <프로듀스 101>은 출연자들에게 브루마(짧은 일본 체육복 반바지) 의상을 입히고 애교를 요구하는 등 수동적 여성성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엠넷 한동철 국장은 한 잡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남자들에게 건전한 야동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프로그램 제작 취지를 밝히기도 했다. <프로듀스 101>에서 여성 가수지망생은 가창력, 춤, 외모 등으로 끊임없이 평가당하며 순위를 유지하기 위해 선택받아야 하는 존재로 전락했다. 이를 통해 <아이즈>는 우리나라 여성 아이돌이 매체에서 어떻게 소비되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한다.


뉴스와 같이 객관성과 공정성이 요구되는 언론에서도 여성혐오 표현이 존재한다. 뉴스에서 흔히 사용되는 ‘○○녀’라는 표기도 이에 해당한다. 이뿐만 아니라 직업 앞에 여성임을 표시하는 ‘여’를 붙여 ‘여○○’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도 지적되고 있다. 이는 여성을 남성에서 파생된 성이라고 보는 표현임으로 여성혐오에 해당한다.   김수아(서울대 언론정보학) 교수는 “여성을 별도로 표기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남성이 인간의 기준이라는 생각이 내포된 표현”이라며 “여성은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존재가 아니므로 반드시 별개로 칭해야 한다”고 전했다.

대중 예술작품에도
만연한 여성혐오표현

최근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한 비판을 담은 대중가요 가사에도 여성혐오 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 가수 산이의 <나쁜 년(Bad Year)>이라는 곡에서 ‘년’의 경우 해(年)를 뜻하는 말과 여성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중의적으로 사용됐다. DJ DOC의 <수취인분명>에서도 ‘미스박’이라는 가사가 여성혐오 표현이라 지적되기도 했다. ‘미스’는 영어권에서도 성차별적인 단어로 여겨지며 한국사회에선 사회적 지위가 낮은 여성을 부를 때 사용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박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올림머리, 성형, 드라마 등을 여성스러운 것으로 설정한 가사가 많았다. 이에 최강희(대구, 22) 씨는 “수많은 잘못을 제치고 굳이 여성성을 맹렬히 공격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남성의 실패는 개인의 실패가 되고 여성의 실패는 여성 전체의 실패, 열등함이 되는 것은 명백한 여성혐오이다”라고 전했다.


영화에서 소비되는 여성의 잘못된 이미지도 여성혐오 표현에 해당한다. 주요 서사가 남성 캐릭터의 위주로 흘러가고 여성 캐릭터는 부수적인 역할을 하는 영화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누아르 영화에서 폭력적인 장면이나 처연한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여성 캐릭터를 폭력의 제물로 써온 경우가 많다. 안채은(경영 15) 씨는 “남성은 항상 카리스마를 지닌 강한 캐릭터로 묘사되는 반면 여성은 성적 매력을 어필하거나 폭력의 대상이 되는 캐릭터인 경우를 많이 보고 차별이라고 느껴왔다”고 전했다.

“미디어 속 여성혐오는
성별 질서 유지하려는 활동”

이러한 대중문화 속 여성혐오 표현이 성행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가부장적인 사고의 잔재를 이유로 꼽는다. 기존 남성위주의 시선으로 무분별한 여성혐오 요소가 매체에서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김수아 교수는 “미디어의 여성혐오 문화 생산은 가부장적 성별의 질서를 유지하는 구조적 활동”이라고 지적했다.


남성들의 시선에서 여성의 성을 상업화하는 것도 여성혐오 표현에 해당한다. 민주언론시민연합 김언경 사무처장은 “상업적 목적으로 여성의 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모든 문제를 성적인 것으로 치환하는 것이 원인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사회·경제적인 어려움의 원인을 활동 영역을 넓혀가는 여성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원인이라고 거론하기도 한다. 여성혐오 프로그램이 양성의 갈등을 유발하는 표현을 생산하며 이에 동조하고 있다고 말한다. 손남훈 문학평론가는 “경제적으로 점점 힘들어지면서 여성들이 활동 영역을 넓혀가는 데 남성들이 위협을 느끼는 분위기가 존재한다”며 “이러한 감정을 쉬이 해소할 수 있는 대상이 여성이 되는 것이고, 여성이 혐오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 한다”고 전했다.

표현의 자유로 용납될 수 없다

일각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문화속의 여성혐오 표현에 대한 공론화를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표현의 자유는 모두가 차별받지 않을 권리와 함께 공존해야 할 가치라고 전한다. 표현의 자유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고, 특정 표현이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할 때 그 가치는 훼손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여성혐오 표현은 여성이 차별받지 않는 권리를 침해한다고 지적한다. 김수아 교수는 “여성혐오 표현은 여성이 공론장에 들어가는 것을 위축시키므로 비판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여성혐오에 대한 비판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반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수아 교수는 “표현 후 제기된 비판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대중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여성혐오 표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올바른 젠더관을 제시하는 콘텐츠 창작 분위기가 형성돼야 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창간한 잡지 <무비 페미니즘>도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무비 페미니즘>은 여성을 도구, 기능적으로 소비하지 않는 영화가 많이 만들어져야한다는 것을 목표로 여성이 서사의 주체가 되는 영화들을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매체에 여성혐오 표현이 이를 비판을 위해 등장한다면 긍정적 기능도 존재한다는 의견도 있다. 안채은(경영 15) 씨는 “여성혐오 요소를 최대한 다루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이 문제를 역으로 비꼬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는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을 여성혐오로 인식해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 형성에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제도적 개선을 통해 여성혐오 표현을 없애기 위한 노력도 존재한다. 여성가족부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올해부터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30조 양성평등 조항을 기존보다 더 명확하고 구체적인 내용으로 개정하였다. △특정 성을 혐오적으로 묘사하거나 왜곡하는 등 성차별적인 표현 금지 △열등한 존재로 다루거나 획일적으로 규정해 고정관념 조장 금지 △성폭력, 성희롱, 성매매, 가정폭력 등을 정당화할 우려가 있는 내용 방송 금지 △성폭력, 성희롱, 성매매 등을 지나치게 자세하게 묘사하거나 선정적으로 재연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이 추가되었다. 방심위 관계자는 “현행 규정이 추상적이고 심의 건수가 지적에 비해 적다는 비판에 양성평등 규정 내용을 구체화 하였다”라고 전했다. 뉴스와 같은 언론 매체에서 존재해왔던 여성의 성폭력 피해 보도에서 문제시 되었던 선정적인 시각자료 문제도 개선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김언경 사무처장은 “그동안 성행되어온 성폭력 사례 등에서 나타나는 2차 가해 수준의 보도들에 대해 적용하는 조항이 생겼다”며 “이런 조항뿐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표현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방심위가 보다 상세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면 좋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모든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생산자가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문화를 생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수아 교수는 “심의 규정의 변화는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을 부추길 가능성도 있다”며 “심의 규정보다 제작자의 인식 변화를 위한 교육과 여성혐오 표현 문제를 공론화하는 게 우선이다”고 전했다. 이에 민주언론시민연합 김언경 사무처장은 “언론에서의 기본이 인권인 만큼 어떤 혐오 표현도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이를 미리 인식할 수 있도록 하고 문제 발생 후에 빠르게 정정하고 사과하는 등의 조치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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