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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사람 넋두리
  • 이광영 간사
  • 승인 2017.04.02 04:35
  • 호수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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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곧 부산이었다. 내디딘 터 대부분이 부산 땅이었고, 들이쉰 숨 대부분이 부산 공기였다. 딱히 불만은 없었다. 막힐 일 없는 지하철이 편했고, 썩 춥지 않은 날씨가 편했고, 눈에 익은 도시가 편했다. ‘사직 노래방’도 즐거웠고 바닷바람도 행복했다. 어휘나 억양의 영향인지, 어딜 가나 ‘부산 사람’이라는 말이 덧붙여졌지만 기분 나쁠 일이 아니었다. 스무 살 무렵, 서울에서 온 한 동기가 부산을 하찮게 여기며 고향을 자랑할 때에도 그저 웃어 흘릴 뿐이었다. 그저 만족스러웠고 또 당연했다. 부산 사람이라는 게.

부족(不足)이 없었다. 한데 친한 친구들이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탈부산’의 이유는 다양했다. 대기업에 합격한 친구가 서울로 발령받은 일은 빤했다. 부산에 원하는 직종의 기업이 없어 떠난 친구도 있다. 배우와 가수를 꿈꾸는 친구들도 상경했다. 부산에선 누릴 수 없는 문화생활을 위해 떠난 친구도 있다. 폭 넓은 공부를 위해 서울로 ‘유학’ 간 친구도 있다. 그렇게 친구들의 터전은 서울로 옮겨갔고, 부산은 명절에나 들르는 고향이 돼버렸다. 자의적인 이도, 피치 못한 이도 있다. 어쨌든 모두가 부족을 절감하며 떠났다. 그런 탓에 필자에게도 불안감이 피어났다. 부산 사람이라는 게.

며칠 전, ‘사실상 본선’이라고들 하는 더불어민주당 경선이 시작됐다. 후보들은 각 지역권을 돌며 민심 획득에 필사적이었다. 오롯한 부산 사람이자 선거인단인 필자는, 영남권 토론회를 눈여겨볼 수밖에 없었다. 쟁쟁한 이들의 토론회답게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경제가 무너졌다느니, 도시가 낙후되고 있다느니, 보수적인 곳이라느니. 낙동강이 어쩌고, 공항이 저쩌고, 조선 산업이 이러쿵, 4차 산업이 저러쿵. 주요한 현안이고 해결책이 필요한 것들이었다. 각자의 문제인식이 뚜렷했고, 정책도 훌륭했다. 그런데 기분이 상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부산은 문제투성이였다. 부산 사람이라는 자존감이 꾸준히 내려갔다. 참으로 ‘서울 사람’ 같던 그 이들의 토론 덕에, 곧 멍에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부산 사람이라는 게.

몇 년 전, 밀양 송전탑 건설 현장에 취재를 간 적이 있었다. 아수라장이었다. 또래의 경찰들이 공사현장을 차지하기 위해 방패를 들이밀었고, 서너 배를 더 살아온 주민들은 격렬히 막아섰다. 실신해 나간 이가 있을 정도로 참혹했다. ‘어째서 그렇게나 거칠었을까’하는 의문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가장 큰 전력 수요처인 수도권을 위해서. 그렇게 송전탑은 솟았고, 세계 최대 원전밀집단지에서 발한 전력이 수도권을 향해 힘차게 전진했다. 물론 야만의 현장에 서울 사람은 없었고, 이는 ‘지역의 문제’로 치부됐다. 그래서 지진이 일었을 땐 조금 억울했다. 부산 사람이라는 게.

필자는 나고 자란 부산이 좋다. 계속 부산 사람이고 싶다. 한데 다음 주에는 서울에 가야 한다. 너무나 듣고 싶은 강연이 서울에서‘만’ 열리기 때문이다. 곧 돌아오겠지만, 언젠가는 다시 떠나야 한다. 원하는 직종의 기업이 ‘모두’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집값 비싸고 미세먼지도 많은 서울에 살고 싶진 않지만 어쩔 수 없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필자에게, 부산은 ‘살 수 없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물론 왜인지는 도통 알 수가 없다. 말 많고 탈 많은 부산이 ‘왜’ 문제가 됐는지, 아무도 보려 하지 않더라. 그래서 넋두리만 늘어놓을 뿐이다. 아아, 부산에 살고 싶다. 

이광영 간사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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