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차별, 여성운동, 성평등··· 대학 내 여성을 말하다

역사적으로 우리 학교 여학생들은 부당한 여성차별을 타개하기 위해 여성운동을 전개했다.
하지만 여성차별이라는 거대한 벽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지금 우리 학교의 여성차별의 벽은 얼마나 높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또한 최근 성평등을 위해 활동을 시작한 여명의 이야기도 들어봤다.

 

대학 내 여성차별은 그 모습과 형태만 다를 뿐 우리 대학 사회에 항상 잔재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 내 여성운동이 있었다. 대학 내 여성운동은 역사에서 많은 사건을 겪으며 잠시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오늘날 다시 살아나고 있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대학 내 여성운동, 그 중 우리 학교 여성운동의 발자취를 더듬어 봤다.

여성운동, 약동했던 지난날

대학 내 여성운동은 주로 △총여학생회 △여성주의 교지 활동 △여성주의 모임, 동아리를 통해 이뤄졌다. 80년대 일종의 문화 운동 차원에서 대학에 ‘여성학’ 강의가 신설되면서 대학 내 여성 운동가들이 양성됐다. 총여학생회(이하 총여)는 1984년 고려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 처음 생긴 이후 모든 대학에서 잇따라 발족했다. 우리 학교도 1988년에 총여가 생겨났다. 총학생회(이하 총학) 산하 여학생부가 총학과 독립된 총여로 바뀐 것이다. 당시 총여는 독립적인 체제를 통해 운동을 장기적이고 조직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기존의 총학 산하 부서로서는 한계를 느낀 것이다. 이후 총여는 △여성학 교육과정 개설 △여성차별철폐 등의 사업을 전개해나갔다.

여성운동은 주로 총여를 통해 전개되던 80~90년대 이후 ‘영 페미니스트’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이들은 기존의 반성폭력 운동 기조와 동시에 남녀불평등한 성차별적 구조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새로운 기조를 갖고 있었다. 이들의 존재감이 드러난 것은 2000년에 우리 학교 정문 앞에서 벌인 시위였다. 정문 앞에서 10여 명의 우리 학교 여학생들이 ‘우리도 흡연구역에서 편안히 피우고 싶다’는 현수막과 함께 흡연시위를 펼쳤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우리 학교 내 페미니즘 동아리 ‘월장’이 생겨났다. ‘월장’은 ‘여성의 목소리여!치마를 걷어 부치고 가부장제의 담을 뛰어넘자!’라는 이들의 슬로건에서 착안된 이름이다.

월장은 새롭게 변화하는 사회적 흐름에 맞춰 웹진 <월장>을 창간했다. 웹진 <월장>은 창간호 기획특집 기사로 ‘도마 위의 예비역’을 실었고, 이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술자리에서 음담패설을 일삼고 대학 내에서 군대의 위계 문화를 재현하는 예비역은 대학 내의 적’이라는 기사 문구가 이유였다. 기사가 공개되자마자 당일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비난과 폭력적인 댓글이 달려 홈페이지를 한동안 폐쇄해야만 했다. 이에 월장은 사과문을 게재했지만 사태는 진정되지 않았다. 월장을 향한 분노와 인신공격, 테러 위협은 계속됐다. 결국 총학과 총여가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월장과 반대 세력 ‘안티월장’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토론회 당일 안티월장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으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당시 우리 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강의했던 노혜경 시인은 “월장을 반대하는 세력의 태도가 폭력적이었다”며 “자신들이 갖고 있던 사회에 대한 불만을 여성들에게 푼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시대의 벽에 부딪힌 그들

2000년대를 지나면서 많은 대학의 총여가 사라지거나 유명무실해졌다. 전체적인 학생운동이 퇴조함에 따라 이들도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부산 여성회 조영은 정치위원장은 “2000년대 중반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 이적단체로 규정이 되면서 학생운동 전반이 움츠렸다”며 “자연스레 대학 내 여성운동도 퇴조한 것 같다”고 전했다. 작년 고려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석순>이 실시한 <전국 4년제 대학교 총여학생회 실태 전수조사>에 따르면 전체 217개교 중 17% (37개교)만이 총여가 존재했다.

우리 학교 총여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후보가 나오지 않아 조직의 존속이 불투명해졌다. 결국 ‘2012년 하반기 민족효원 대의원총회’에서 총여는 학칙에서 제외되고 성평등위원회로 대체됐다. 당시 총학 김인애(기계공학 10) 회장은 “그동안 총여가 5년 동안 운영되지 않았다”며 “성차별 문제를 조금 더 원활하게 다루기 위해 총여를 폐지하고 성평등위원회로 대체했다”고 밝혔다.「<부대신문>제1461호(2012년 10월 29일자) 참조」그러나 ‘2015년 하반기 민족효원 대의원총회’를 통해 성평등위원회마저도 회칙에서 제외되어 학생회를 통한 여성운동 조직의 명맥이 완전히 끝나버렸다. 성평등위원회의 폐지 이유에 대해 당시 총학 황석제(기계공학 10) 회장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기구이며 대학본부에서 해당 위원회의 역할을 담당하는 기구를 마련해 놓은 상태”라고 설명했다.「<부대신문>제1509호(2015년도 9월 21일자) 참조」또한 학내 여성주의 모임이나 동아리도 ‘월장’ 이후 이렇다할 움직임이 없었다.

역사 앞에 다시 나타난 그들

하지만 작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커지면서 다시금 대학 내 여성운동이 되살아나고 있다. 조영은 정치위원장은 “작년에 ‘메갈리아’나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일반 사람들도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이 두 사건을 계기로 해서 자연스레 대학 내 여성주의 모임들이 많이 생겨난 것 같다”고 말했다.

‘월장’ 이후 조용했던 우리 학교에 최근 새로운 모임이 생겨나고 있다. ‘부산 페미모임 월담’(이하 월담)과 ‘부산대학교 여성들의 혁명 여명’(이하 여명) 등이 바로 그것이다. 월담은 작년 1월 만들어질 당시 논란에 휩싸여 고초를 겪었다. 우리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 ‘마이피누’ 게시판을 통해 모집 공고글을 게재했다. 하지만 글이 게재되자마자 비난 댓글이 잇달아 달렸다. 이 사건을 통해 아직도 우리 학교 학생들이 페미니즘이라는 이슈에 민감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월담 김예지 운영자는 “페미니즘 책을 함께 모여 읽고 싶어 모임을 만들었다”며 “그 당시 모집글에 ‘왜 페미니즘이냐’, ‘의도가 뭐냐’라는 식으로 댓글이 많이 달렸다”고 전했다. 여명은 올해 3월 시작한 동아리로 가장 최근에 생겨났다. 실천주의를 표방해 활동 중에 있다. 지난 16일에는 양산대학교 병원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대자보를 붙이면서 활동의 신호탄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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