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빈, 강하늘 주연의 영화 <스물>이 나름 좋은 이유는 청춘 시기의 불량과 일탈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행위를 무조건 옹호하는 것은 아니어서 더 공감이 간다. 그들이 왜 그런 짓들을 하는지 행위의 인과 관계와 배경을 살필 뿐이다. 비판해도 애정이 있어야 문제점이 긍정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어떤 집단의 문제라도 외부자의 시선과 잣대보다는 내부자의 마음도 헤아릴 필요가 있다. 대학생을 바라보는 시선도 이런 따뜻한 청춘의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인터넷과 언론에 등장하는 사례들은 그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새봄 신학기 즈음이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나오는 뉴스들이 있는데 바로 대학생들의 못된 짓들이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나 환영회, MT에서 이뤄지는 폭력과 얼차려 그리고 음주 사고 등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대체로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으로 채워진다. 껀수를 찾는 하이에나 같다. 이런 보도 내용은 주로 보수 신문에서 다뤄진다. 다룰 수는 있지만 문제는 심정적인 태도인데 요즘 젊은 세대들의 행태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기본으로 깔려있다. 문제점들이 개선되고 있는 상황보다는 문제가 여전하다거나 더 심각한 것으로 다룬다. 객관적으로 볼 때 예전보다 더 심각해졌다고 볼 근거는 없다. 또한 대학생들이 마치 모두 그와 같이 심각한 행태에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것은 일반화의 오류에 불과하다. 4년제 대학 교육 기관만 해도 340여 개에 이른다. 여기에서 다시 각 학과로 나눠보면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대학생으로 다 묶기에는 그런 편차와 범위가 매우 넓다. 대학생들의 행태 속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들은 분명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이 창조적으로 발명한 것이 아니다. 어느 기업의 몇몇 행태를 가지고 요즘 샐러리맨들은 이렇다고 할 수 있을까? 예전보다 달라진 대학의 모습은 뉴스가 되지 못할 것이다. 이른바 그림이 안 되기 때문이다. 오로지 무언가 자극적인 시각적 효과가 있어야 하기에 여전히 문제가 많은 집단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쳐도 그것이 비단 대학생만의 문제일까. 예컨대 정말 대학생만이 폭력과 음주 문화에 쩔어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그런 집단은 우리 사회에는 더 광범위하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군사 문화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우리나라의 기업 집단은 여전히 조폭 집단이며 까라면 까야 하는 문화이다. 공공 조직 안에서는 어떠한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매우 정의롭지 못하고 불합리하며 반(反)인권적이어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최순실 사태는 일면에 불과하며 소수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왜 대학생들만 이렇게 집중적으로 다뤄질까. 그들이 약자이기 때문이다. 두드려 맞기 참 좋은 존재이다. 조소하고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기 쉽다. 대학을 아직 지성의 전당이라는 프레임에 가두면서 엄격한 잣대를 더 강하게 들이댄다. 대학의 위상은 이전과 많이 달라졌는데도 말이다. 이름만 그럴 뿐 주어진 것은 하나 없는 빈자(貧者)들인데 말이다. 근본적으로는 하나의 주체로 인식하지 않고, 낮춰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더구나 대학생은 확실한 자기 권력도 언로도 갖지 못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매우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으므로 개별적으로 방어가 쉽지 않다.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항상 치이고 씹혀야 한다. 어느새 대학생을 다루는 드라마나 영화도 사라진 지 오래다. 오랜만에 등장하는 모습들은 주로 부정적으로 올드 미디어에서 판매 부수나 페이지뷰만 증대시킨 데 이용된다.
  드라마 <치즈인더트랩>에서 얼핏 보이는 대학생들의 삶은 바쁘고 고달프다. 그것은 비단 대학생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드라마에도 등장하듯이 대학 내에도 분명 나쁜 짓을 하는 이들도 있다. 인간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대학생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덫에 있는 것 아닐까. 지금 대학생들의 행태는 과거 기성 시대가 만들어 놓은 유습인 경우가 많다. 오히려 이를 부수고 벗어나기 위해 분투하고 있을 뿐이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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