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물질적 세계의 공기, 물, 땅의 결실을 비롯하여 자연이 주는 모든 것을 공통의 부(commonwealth, 공통체)라고 한다. 그런데 자연이 주는 것뿐 아니라 사회적 생산의 결과물 중 사회적 상호작용이나 차후의 생산에 필요한 것들, 즉 지식, 언어, 코드, 정보, 몸짓 등도 역시 공통의 부이다. 세계 도처에서 신자유주의적 흐름은 공통의 부를 사유화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많은 부분은 여전히 공통의 것으로 남아 있고 자유로운 접근과 능동적인 참여를 통해 발전하고 있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공통체들 중 몇 가지 예를 생각해 보자. 우리가 느끼는 분노나 행복, 기쁨도 공통체이다. 이 감정들은 일시적이고 사적인 것에 머물지 않고 집단적인 차원을 가질 수 있다. 예컨대 행복이나 기쁨은 개인의 만족에만 연관된 것이 아니라, 집단이 행동하고 사유하는 힘이 증대된 상태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감정, 언어, 지식 등의 공통의 부가 사적 소유나 공적 권위에 종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가진 다양한 사유, 창조와 소통의 힘은 분명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학 역시 공통체이다. 이 말은 단순히 대학의 기반시설과 자원이 공유지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이렇게만 이해하면 사립대학은 공통체가 아닌 것이 되고 만다). 그것은 외려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이뤄지는 교육 및 다양한 상호작용, 대학이 (재)생산해내는 지식과 감정 역시 공통의 부이고, 우리는 이를 기반으로 사회적 삶을 영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교육에 대한 이해의 폭이 상당히 확장되고 있으며, 따라서 대학은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뿐 아니라 평생교육 차원에서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문화, 교육의 공간으로 활용될 필요도 요청되고 있다. 다시 말해 대학은 일차적으로는 학생의 교육을 위한 공간이지만, 동시에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지역성과 시민성을 강화하는 문화적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시민과 학생을 분리해서 이해할 필요는 없다. 학생도 역시 시민이다.) 사회적 삶 속의 여러 문제를 학문적, 교육적, 문화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풀어나갈 때 대학은 진정한 의미의 공통체라 할 수 있을 터다.

그런데 대학이 공통체라고 할 때, 이 말을 마치 대학이 우리에게 수동적으로 이미 주어져 있는 무언가라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 말은 대학을 공통체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민주적 시민의 역량에 대한 요청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우리가 대학이라는 공간, 그리고 대학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지식을 공유하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상상 가능하고 실현 가능해진다. 민주주의는 과거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의 결과로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어떤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사회적 삶 속에서 집단적인 실천을 통해 부단히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은폐된 것들과 당연시 되는 것들 앞에서 과감히 알고자 하고 과감해 지려고 하는 것, 대학 구성원들 간의 모든 상호작용 과정 속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자유와 평등을 요청하며 합의를 찾아 나가는 것, 공통의 부를 사유화하거나 특정한 권위 아래 두려는 모든 시도를 거부하는 것, 이것이 대학을 공통체로 만들어내는 유력한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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