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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없는 가족은 불가능한가요 ?
  • 박지영 대학·문화부장
  • 승인 2017.03.06 07:17
  • 호수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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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부산에서 함께 살아왔던 여고 동창생인 허 씨(북구, 62)와 김 씨(북구, 62). 2013년 8월 허 씨는 병원에서 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이미 암세포가 온몸에 전이된 허 씨는 10월 초 대학병원에서 치료 도중 숨을 거뒀다. 허 씨가 숨지자 김 씨는 함께 살던 아파트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수년간 얼굴을 비치지 않던 허 씨의 친족이 재산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가족이 아니었기에 김 씨는 손쓸 도리조차 없었다. 그리고 2013년 10월 30일 새벽, 신변을 비관한 김 씨는 20층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가족은 더 이상 혈연과 배우자만을 뜻하지 않는다. △비혼 △이혼 △재혼의 증가로 △1인 가구 △비혼인 동거가구 △한부모가족 등 다양한 가족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이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수년을 동반자로 살아도 법적 가족이 아니라면 동반자에 대한 법적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 위의 김 씨와 허 씨처럼 말이다. ‘서로 혼인하지 않은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선택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비혼 동거가구는 사회적 편견과 미비한 법 등으로 사회생활에 차별을 겪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족’이란

머독에 따르면 가족은 ‘공동거주, 경제적 협동 및 출산을 특징으로 하는 사회집단’이다. 그는 ‘가족은 양성의 성인들을 포함하고 적어도 그들 중 두 사람은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성관계를 유지한다. 그리고 한 명 또는 그 이상의 친자녀 혹은 입양된 자녀들로 구성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가족은 이보다 좁은 범위인 ‘혼인’과 ‘혈연’을 바탕으로 정의된다. <민법> 제770조에 따르면 가족은 ‘1.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 자매 2.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이며, 제2호의 경우 생계를 같이하는 경우에 한한다.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에서도 가족은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라고 정의한다. 많은 정의에서 찾아볼 수 있듯 가족의 형성에 ‘혼인’은 필수적이다.

비혼 동거를 선택한 사람들

그러나 전통적 가족관에 대한 생각은 바뀌고 있다. 특히 비혼(非婚) 가족에 대한 긍정적 의견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이 발표한 <동아시아 국제사회조사 참여 및 가족 태도 국제비교연구>에 따르면 전국 만 18세 이상 1,052명(남성 476명, 여성 576명) 중 320명이 ‘결혼할 의사 없이 함께 사는 것도 괜찮다’고 답변했다. 이는 2006년 조사 때보다 8.7%p 상승한 값이다. 동거에 대한 긍정적 의견은 남성이 31.5%로 여성보다 2.1%p 높았다. 연령별로는 30대가 48.9%로 가장 높았고, 20대가 38.7%로 그 뒤를 이었다.

실제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 법률혼은 아니지만, 동반자와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들이 비혼 동거를 선택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작년 1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소가 발표한 <다양한 가족의 출산 및 양육실태와 정책과제-비혼 동거가족을 중심으로>(이하 가족 보고서)가 비혼 동거인 260명에게 동거 선택의 이유를 물은 결과, ‘결혼 과정의 한 단계로서의 동거’(49.4%)와 ‘결혼의 대안으로서의 동거 및 혼인과 관계없는 동거’(50.6%)로 나타났다. 후자의 경우 세부적으로 나뉜다. 먼저 결혼을 자발적으로 기피한 경우다. 이들은 결혼제도나 규범 등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한다. 아니면 혼인 계획은 구체적이지 않지만 상대방과 의지하며 살아가고 싶은 경우도 있다. 결혼에 접근 가능성이 없어 비자발적으로 비혼이 되기도 한다. 대개 우리나라 법에서 허용하지 않는 동성 관계 등이 해당한다

법률혼이 아니라서 “안 됩니다”

비혼 동거가족이 늘어나고 전통적 가족의 의미는 점점 흐려지지만, 법과 정책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결혼’은 공사법적 혜택, 권리를 수여하는 기준이 된다. 가족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 중 114명(45.1%)이 정부 혜택 및 서비스 등에서의 차별 경험이 있었다고 답했다. 이들이 받은 차별은 대부분 정부와 회사 등이 제공하는 혜택에서 제외되는 경험이었다.
특히 경제적 영역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현행 제도는 법적 부부에게만 △재산 분담 및 재산 명의 △주거 △공공보험 △세제 등의 공적인 혜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불안정한 관계에서 경제적 책임은 불균등하게 이뤄지거나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자산을 형성하는 데 서로의 기여가 있고 공동소유라 서로 인정해도 한쪽 명의로 되어 있는 재산 소유는 불안정하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공동명의를 고려해도 법적 타인이기 때문에 엄청난 증여세를 물어야 한다. 결국 많은 생활동반자들은 공동명의를 포기한 불안정한 상황에 놓이고, 관계 해소 시의 어려움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  

이 외에도 경제적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경우는 다양했다. ‘생활동반자 사례자 포커스 인터뷰를 통한 정책욕구조사’(이하 사례자 조사)에 참여한 많은 생활동반자들이 ‘주거’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사례자 조사에 참여한 생활동반자 H 씨와 I 씨는 주택을 구매할 때 대출이 가장 힘들었다. 신혼부부 전세자금대출이었다면 금전 마련을 더욱 수월하게 할 수 있었지만, 결혼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높은 이율의 대출을 고려해야 했다. ‘공공보험’ 혜택도 비슷했다. 상호 부양관계에 놓여있지만 혼인, 혈연관계가 아니기에 의료보험, 4대 보험 등의 공공보험에 따로 가입할 수밖에 없다. 경제적 부양관계를 법적으로 전혀 인정받지 못해 가족 단위로 낼 수 있는 보험료들을 따로 내 경제적 불이익을 안아야 했다. 이들은 사후마저도 걱정해야 했다. 사례자 조사에 참여한 생활동반자 L 씨는 사후 연금이 파트너에게 전해지지 않을까 불안하다. L 씨는 ‘부부라면 연금이 아내한테 가지만, 내가 죽으면 살아생전 벌어놓은 돈이 관계도 좋지 않은 친족에게 가는 건가’라고 답했다.

경제적 영역 외에도 차별은 존재했다. 의료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 △수술 동의서 작성 △밤샘 면회의 자격이 주어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다. 또한 법적 부부관계 및 가족관계 갈등에 개입하고 지원하는 여러 정부지원 센터나 상담소의 이용도 어렵다. 자녀를 갖는 데에도 법적 지위가 보장되지 않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찍 법제도 마련한 서구 국가

유럽의 많은 국가는 1970년대 이후부터 동거를 자연스러운 가족 형태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또한 이에 대해 법제도적으로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보장하고 있다. 정재훈(서울여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한국일보>에서 “서구에서 비혼 가족은 이미 가족의 한 개념으로 자리 잡았고, 이에 대한 정부정책도 수십 년 전부터 시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te Civil De Solidarite, PACS)(이하 PACS)이 있다. 1999년 제정된 PACS는 동성 커플의 권리 보장을 위해 시작됐지만 지금은 많은 비혼 동거인이 이용하고 있다. 동거의 단점을 보완했기 때문이다. PACS를 체결한 두 사람은, 정식 결혼은 아니지만 결혼 가정이 받는 혜택을 동일하게 제공받을 수 있다. 계약 동거를 원하는 커플이 시민연대계약서를 법원에 제출하면 내용에 따라 상호 간 권리와 의무, 채무에 대한 연대책임을 지며, 제출 후 3년이 지나면 유산도 상속받을 수 있다. 프랑스 외에도 많은 서구 국가들은 생활동반자와 관련된 법이 마련돼 이들의 사회적 지위를 보장하고 있다.

비혼 동거여도 ‘다름’이 없도록

아직 우리나라는 비혼 동거에 대한 차별이 많지만,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다. 법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생활동반자에 관한 법률안>이 대표적이다. 이는 2014년부터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준비하고 있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혈연 및 혼인 관계에 얽혀 있지 않은 동거가족 구성원들이 기존의 가족 관계와 마찬가지로 법률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진선미 의원은 <한겨레>와의 인터뷰를 통해 “누구나 ‘삶을 함께 살아갈 특별한 한 사람’을 가질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라며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에 해당한다”고 입법 취지를 밝혔다. <생활동반자에 관한 법률안>은 현재 발의 준비 중이다. 진선미 의원실 관계자는 “초안에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이 보였다”며 “개별법 개정안을 통해 사회복지 혜택을 늘리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올해 안에 법안이 발의될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 부처도 이들을 위한 법제도적 방안을 준비 중이다.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위원회는 작년에 발표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에서 비혼·동거가족에 대한 사회·제도적 차별을 개선할 것이라 밝혔다.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위원회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비혼·동거가구에 대한 사회적 차별금지 및 구제방안을 연구, 검토할 예정’이며, ‘비혼·동거가구에 대한 사회적 차별 금지 방안 연구를 추진할 것’이라 밝혔다.

 <생활동반자에 관한 법률>이 발의되고 제정되면 비혼 동거가구의 상황은 이전보다 한결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사회의 부정적 편견이 만재한다면 법률은 완전히 기능하지 못한다. 떳떳이 생활동반자라 밝히지 못해 권리를 포기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비혼 동거도 삶의 방식 가운데 하나로 존중받으려면 가족과 결혼의 낡은 틀을 깨야 한다. 결혼만이 가족의 시작이라는 생각은 변화된 사회상에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은 전통가족제도가 사회 밖으로 밀어낸 그들을 맞이할 때다.

 

박지영 대학·문화부장  ecocheese@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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