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지난겨울의 미련이 가끔 옷깃을 파고들어 움츠러들 때도 있지만, 이제 따스한 햇살이 교정을 화사하게 만들고 있다. 아니, 사실은 지금 새 학기를 맞은 교정을 화사하게 만드는 것은 햇살보다는 여기 저기 활기 넘치는 밝은 웃음소리일 터이다. 분명 그렇다. 취업 걱정 속에 대학가가 활력을 잃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새 학기의 교정은 생기 가득하다. 특히 인생의 제2막을 이제 막 시작한 새내기들의 풋풋함이 싱그럽다. 일상의 소소함 속 행복이란 이런 데에서 느껴지는 것이리라.

그러나 우리 부산대학교 구성원들은 이러한 평범한 행복을 느껴본지 오래되었다. 지난 몇 년간 우리 대학은 총장직선제로 상징되는 대학자율화와 민주화를 지켜내기 위해 크나큰 희생을 치러왔다. 급기야 고현철 교수님을 우리 곁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을 겪기까지 한 것이다. 큰 희생을 치르고서야 겨우 우리는 우리 손으로 뽑은 총장 후보를 대학의 장으로 맞을 수 있었다. 대학의 자율은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지난 해 10월에야 불거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조사를 하면 할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제는 놀라는 것조차 무뎌질 정도다. 아비의 검은 돈으로 치장한 강남의 졸부 사모님이 빨간펜 선생님을 하는 사이, 우리는 무고한 수많은 어린 아이들을 잃고 재벌의 탈법적 경영승계를 지켜봐야 했다. 노동자들은 거리로 나앉고 있다. 그래도 그들은 뻔뻔하게 무죄를 강변하고 있다. 아무 죄 없는 태극기를 오염시키면서 말이다. 적반하장도 이 정도면 국가대표급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무기력하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을 지켜내기 위해 모든 구성원들이 힘을 모았고 그 가운데 우리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공동체의 힘을 경험했다. 열린 광장에서 학생과 교수들이 소통하며 대학의 미래를 꿈꾸었다. 우리 대학은 점차 비정상을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대한민국은 87년 6월 항쟁 이후 처음으로 광장민주주의를 이루어내었다.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촛불은 대한민국 미래를 밝혀줄 희망임이 분명하다. 방방곡곡 타오른 촛불 속에서 어린 학생들은 민주주의를 배웠고, 청년들은 미래를 보았으며, 기성세대는 마음 한 켠에 자리 잡은 소시민적 부끄러움을 털어낼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점차 비정상을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행동은 변화와 한 몸이다. 빛은 어둠 속에서야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낸다.

기대와 설렘 속에 대학생활을 시작한 새내기들, 첫 후배를 맞아 멋쩍게 웃음 지을 2학년들, 졸업과 진로가 현실로 다가와 걱정인 3,4학년들 모두 저마다의 바람과 고민이 있을 터이다. 고민은 머리가 아니라 발로 해야 하는 것이다. 머릿속 모든 생각은 행동으로 옮길 때 드디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아니 우리의 오랜 역사에서 이를 경험해왔다. 나의 미래를 위해, 우리의 행복을 위해, 다음 세대의 안녕을 위해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보는 것은 어떨까? “행동은 모든 성공의 핵심적 기초”인 것이다. 피카소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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