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너는 나와 달리 이 글을 읽었으니, 차별받아 마땅하다’고 한다면 어찌 반응하겠나? 대부분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며 무시하고 말 것이다. 언짢음에 곁들이는 콧방귀 정도가 가장 격한 반응일 것이다. 화를 내며 핏대를 세우지도, 글을 읽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지도 않을 일이다. 반박하기 민망할 정도의 하찮음에 불과하다. 한데 터무니없게 여겨지는 이 상황이, 일상에선 의외로 빈번하다. 고작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말이다. 도리어 동류의 차별이 당연케 행해져,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숨기거나, 그 행위가 잘못됐다 생각해버리기도 한다. 어이가 없다.
  그래서 법으로라도 막으려들 한다. 일명 ‘차별금지법’이다. 요지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자는 거다. 한데 이조차 반대하는 이들이 꽤나 많다. 물론 차별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대상이 ‘틀린 존재’라는 주장이다. 주로 언급되는 것이 ‘성소수자’인데, 주장에 따르자면 그들은 고칠 수 없는(사실 고칠 필요가 없는) 질병을 가진 세상 만병의 근원(다소 과장했다)이며, 이치(라고 쓰고 성경이라 읽는다)에 어긋난 존재다. 외에도 ‘이상하다’거나 ‘혐오스럽다’며 배척하기도 한다. 더러 관용적인 사람임을 자처하며 ‘나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괜찮다’는 이들이 있는데, 그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하는 또 다른 차별임을 인식하지 못하곤 한다.
  반대의 근거가 되나 싶다. 질병 여부와 관계없이 그저 차별을 금지하자는 건데 말이다. 더군다나 (혹여, 정말 만에 하나) 성적 지향이 질병이더라도 마찬가지다. 사실이라면 사회적 약자로 규정하고 보호함이 마땅할 지언데 차별 금지를 반대하다니, 세상에 이렇게 악덕할 수가 없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늘어놓지만, 결국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다. 달라서 이상하고, 이상하니 문제가 있는 것이고, 문제가 있으니 ‘틀렸다’는 것이다. 이야말로 권력 집단 혹은 다수 집단이 행하는 폭력이다. ‘흑인’이 그랬고(그렇고) ‘여성’이 그랬다(그렇다). 언제나 차별은 소수자나 약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고, 대상은 더 작고 약한 소집단으로 향할 뿐이었다. 후대에서나마 그릇됨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명백한 ‘악행’이지만, 당시에는 그저 일상이었을 일이다. 역사책에서나 나올 법한 ‘웃픈’ 상황에 어처구니없는 상상마저 하게 되는데, 예컨대 ‘미간에 점이 있는 사람’이라든가 ‘검지보다 약지가 긴 사람’이 차별받는 세상 말이다.
  사람은 타인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행동에 앞서 가치판단을 하기 마련이다. 혹자에게는 그 기준이 부모님의 가르침일 수도, 또 다른 이에게는 성경일 수도 있다. 필자는 글을 끄적일 때, 가끔이나마 헌법을 참고하곤 하는데, 오늘은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무려 <대한민국헌법> 제2장의 10조와 11조를 보면서 말이다. 합리적이지 않은 차별을 막는 데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지금이 아닌 ‘나중에’ 해결해야 할 일로 치부되는 현실에, 저토록 이상적인 헌법이 가당키나 한가. 차라리 몇몇 단어를 삭제해야 적확할 테다. 모든 국민, 존엄, 가치, 행복, 권리, 인권, 평등 같은 단어들 말이다. 이들을 제외하면 말이나 되겠느냐마는. 아아, 정말이지 삭막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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