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호밀밭 같은 데서 조그만 어린애들이 어떤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항상 눈앞에 그려본단 말이야. 내가 하는 일은 누구든지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가서 붙잡아 주는 거지. 이를 테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거야” -<호밀밭의 파수꾼> 중
누구나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인 호밀밭. 소설 속의 호밀밭과 같이 누구에게나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은 출판사 <호밀밭> 장현정 편집주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오랫동안 부산에서 꿋꿋이 출판사를 운영해오고 계셨잖아요. 출판사를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2008년에 출판사를 시작했고 내년이면 10주년이 되겠네요. 맨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우리나라는 소설가나 작가들이 아니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경로가 적다고 생각한 것부터였습니다. 출판사는 제가 원하는 방향의 책을 기획해 저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나의 생각을 드러내는 과정을 논문 같은 딱딱한 경로보다는 다양한 내용을 담을 수 있는 책을 통해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1인 출판사를 시작했어요.

△ 출판사 이름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을까요?
출판사의 이름에서도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어요. 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호밀밭이라는 단어가 딱 한번 나오는데요. 주인공 홀든은 때 묻은 세상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이고 유일하게 의지하는 인물은 여동생 피비입니다. 어느 날 여동생 피비가 홀든에게 ‘오빠 커서 뭐가 될래?’라고 묻습니다. 홀든은 ‘호밀밭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때 호밀밭 끝 낭떠러지에서 아이들을 잡아주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대답합니다. 소설 속의 호밀밭은 자유롭게 뛰어노는 공간이죠. 우리 출판사도 마찬가지로 ‘어떤 검열에도 자신의 주장을 당당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공간이 되자’라는 생각에서 <호밀밭>이라고 지었습니다.
실제로 이 생각을 실천하고 있어요. 한 번도 책을 쓴다고 생각하지 못한 분들을 저자로 데뷔시키는 거죠. 저희 책 중에 <한국에서 보내는 편지>는 몽골 여성, 투르크메니스탄 유학생 등 이주민들이 저자인 책이에요. 한국에서 늘 관객의 입장이었던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그들의 정체성을 환기한 것 같아요. 이런 때가 출판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때입니다.

△ ‘호밀밭’의 도서들에서 부산을 주제로 한 책들이 눈에 띄는데요. 지역 출판사라는 점을 장점으로 생각하고 부산 소재를 우선적으로 기획하나요?
장점이긴 하죠. 부산을 소재로 다루면 언론에서 특별히 눈여겨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이를 위해서나 다른 이유로 소재를 부산지역으로 한계 짓지는 않습니다. 주로 시대에 비주류적인 것을 다루는 것 같아요. 우리 출판사가 지방에 있다는 것도 비슷한 흐름입니다. 우리나라는 수도권 위주의 중앙 집중화 현상이 심한 편인데요. 그렇다보니 지역에 있는 문화자원들이나 저자들이 고려되지 않는 경우도 많죠. 그래서 저희는 주로 △지역 △청년 △다문화 △다양성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책을 기획합니다. 그래도 부산의 이야기를 담게 되는건 자연스러운 과정인 것 같아요. 출판사의 역사를 보면 항상 출판사는 그 지역의 도시와 함께 성장해왔습니다. 그 도시의 문인 지식인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역에 있다는 것이 물론 장점이 될 수 있죠. 저희도 사실 의도적으로 부산의 이야기만 담으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 지역에서 오랫동안 출판사를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적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꾸준히 책을 출판해 이름을 알릴 정도로 잘하고 계신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출판은 단순 창업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도 책을 쓰는 사람이고 저희 직원인 서호빈 대표도 영화를 연출하는 사람이어서 작품의 가치를 알고 소통하는 문화산업의 일환으로 임하는 것이 장점이 되지 않나 싶네요. 그리고 아무래도 오래한 것이 경험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물론 저희도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유통과 홍보가 가장 어렵죠. 인쇄업체는 거의 파주에 있고 온라인 서점과 같은 유통업체들은 거의 서울에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번거로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교보문고와 같은 업체의 MD를 만나서 트렌드를 익히고 영업도 해야 하는데 물리적 거리가 한계점입니다. 그래서 올해 하반기에는 서울에 지사를 두어서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도 있어요.

△최근 송인서적이 부도나면서 기존 출판 유통경로의 고질적인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인가요?
중소출판사들은 어음으로 거래하는 경우가 많아요. 어음은 받는 즉시 현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죠. 그런데 분명 대형출판사들도 어음으로 거래하는 곳이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만약 송인서적과 같은 중간업체가 부도하면 출판사가 대금을 받지 못하고 인쇄소에도 대금을 갚지 못하니까 연쇄로 도산하게 되요. 지금이 한창 그런 시기이구요. 원래도 사람들이 책을 잘 읽지 않는데 엎친 데 덮친 격이죠. 그리고 도서정가제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완전 도서정가제가 이루어지지 않다보니 중간 마진만 많이 남는 구조가 되어버린 거죠.
저희는 예상하고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유통 업체를 두개로 분리해둔 상태였어요. 그래서 다른 출판사들보다는 비교적 피해를 덜 입었습니다. 한창 송인서적 부도 때문에 전체적으로 출판사가 더 힘든 시기죠. 그래서 이제는 출판업체들도 직거래를 선호해요. 원래는 도매업체들이 전국 책방들에 뿌리는 형식으로 수수료는 들지만 편했죠. 이제는 소매업체들이 출판사로 바로 연락이 오더라구요. 일부러 직거래를 더 많이 하는 출판사 사장 분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저희도 직거래로 출판유통경로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 송인서적 부도를 떠나서라도 출판계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출판사들이 전체적으로 불황이고 지역 출판사들도 쇠퇴하는 원인은 무엇이라 보시는지요.
정부에 등록된 출판사에 비해 정상적인 영업활동 중인 출판사는 많지 않아요. 부산 지역에도 대여섯 군데?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책 만드는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봐요. 책 자체가 독자들에게 매력을 끌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몇몇 업체들은 번역도 날림으로 한다던가 빨리 팔아먹으려고 상업성에 치중한 경우도 많고요.

△ 그래도 이렇게 지역에서 고군분투하며 출판하고 계시는데요. ‘호밀밭’ 출판사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인식해주었으면 하나요?
점점 더 인식이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출판업체들도 그렇고 부산의 출판사라고 하면 호밀밭 이름을 아시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부산에 대한 책만 만든다는 생각에는 갇혀있지는 않습니다. 부산의 색은 드러내되 그저 좋은 책을 많이 낸다고 생각해주었으면 좋겠어요.

△ 문화산업체로서의 출판사로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것을 알고 싶습니다.
3월 중 계획을 마무리해 4월부터 정기적으로 독서모임이나 저자와 독자의 만남 행사 등 독자 참여형 행사를 운영할 예정이에요. 저희가 직접 기획한 도서의 저자나 꼭 저희 도서가 아니더라도 저자와 독자가 만나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중입니다. 그리고 출판업이나 작가에 관심 있는 청년들을 위해 작가예비과정과 콘텐츠 기획 모임도 준비 중에 있어요. 특히 대학생과 같은 청년층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어요. 미래에 출판업과 작가를 꿈꾸는 청년들은 정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서출판 ‘호밀밭’ 장현정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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