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와 달리 오늘날에는 전화를 사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통신사와 요금제, 수십 가지가 넘는 핸드폰을 고르다 보면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문제는 힘들게 선택했지만, 유선전화기를 처음 집에 놓았을 때 감동에 비하면 만족도는 오히려 떨어진다는 것이다. 전화처럼 현대 사회는 더 많은 선택의 기회를 부여하고 있지만, 개인이 느끼는 만족도는 떨어졌다. 놀라운 것은 최고의 선택을 하려고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한 사람일수록 선택으로 얻는 행복감은 더 낮다는 것이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 왔기에 후회 없는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후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언뜻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선택의 심리학(2004)>의 저자인 미국의 사회행동학자 배리 슈워츠는 전혀 선택할 수 없는 것보다는 좋지만, 선택지가 더 많다고 해서 항상 더 좋은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선택지가 많으면 선택을 위해 투입되는 손실 비용이 증가해 결국 선택에 의한 이득이 감소하고, 때론 비용이 이득보다 큰 경우도 생긴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만족을 최대화하려는 성향을 지닌 사람들에게서 더욱 많이 나타난다. 핸드폰을 산 후 원했던 것(가격, 디자인, 사진 등)을 얻었을 때 ‘이만하면 됐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만족도가 높다. 하지만 자신에게 어울리는 가성비 높은 핸드폰을 구매하기 위해 발품 팔며 열심히 노력한 사람은 사소한 문제에도 불만을 토로하며 선택에 대해 후회한다. 따라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적당한 선에서 ‘이 정도면 됐어’라고 하며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만족하고 있을까? 아마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랬다면 탄핵까지 가지는 않았을 테니까. 사실 누굴 뽑아도 모든 것에 만족할 수는 없다. “그래도 나라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니 그 정도면 됐다”고 말할 수 있었다면 그나마 국민이 최소한 불행하다고 느끼진 않았을 거다.
  국민의 선택이 배신당한 것에 자괴감이 크겠지만 사실 확률에 익숙지 않은 사람은 종종 잘못된 선택을 한다. 1913년 몬테카를로 도박장 룰렛게임에서는 20번 연속으로 검은 구슬이 나오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자 다음번엔 붉은 구슬이 나올 것을 확신한 도박사들이 엄청난 돈을 걸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계속 검은 구슬이 나왔고, 27번째가 되어서야 비로소 붉은 구슬이 나왔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되는가? 그랬다면 여러분도 ‘도박사의 오류’에 빠진 거다. 앞에 어떤 구슬이 나왔더라도 다음번 구슬이 나올 확률은 앞의 사건과 독립된 사건이다. 따라서 21번째라고 해서 붉은 구슬이 나올 확률이 더 높은 것은 아니다. 결국, 확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도박사들은 엄청난 돈을 잃게 된다.
  선택을 그르치는 요인에는 수학적 오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편향(Bias)도 틀린 선택을 하게 만든다. 편향은 어떤 이론을 믿게 되면 그것과 상반되는 증거들은 잘 믿지 않는 경향을 말한다. 국정 농단 사태를 일으킨 대통령이나 간신에게 놀아난 임금만 편향을 지닌 것이 아니다. 알리바바 CEO 마윈 회장이 ‘열정이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강의한 것에 공감했다면 여러분도 이미 편향을 가지고 있다. 물론 성공을 위해서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열정을 가지고 마윈을 따라 했지만 실패한 수많은 마윈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마윈이 되고 싶은 마음이 수많은 실패한 마윈의 존재를 보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열정을 강요하는 그러한 설교는 오히려 여러분을 주눅 들게 하고, 불행하게 만든다.
  그래서 CEO의 성공담에 귀 기울이는 것은 대부분 시간 낭비다. 실패한 원인은 열정이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부산대에 들어올 정도면 여러분은 이미 충분히 노력했다. 남은 것은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뿐이다. 그것이 진학이든 취업이든 그리고 연애든 말이다. 

최원석 과학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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