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기라니. 꽤나 거창해 보이는 말에 밤잠을 설쳤다. ‘마지막 마감’의 파문 탓이었을까. 그날의 편집국은 여느 때보다도 시끌벅적했다. 연례행사마냥 낯익은 광경이었다. 몇몇의 선배들이 그득한 주전부리를 곁들여 기자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반가운 마음에 들뜬 어휘들이 오갔고, 필자 역시 떠들어댔다. 시답잖지만 행복한 이야기가 흘렀다. 그러던 와중 한 선배의 말이 귓가를 차분히 메웠다. “네 연대기를 써 봐라”. 제 깜냥에 감히 연대기냐며 웃어 넘겼지만, 그 한마디가 밤을 채워버렸다. 결국 잠 못 이뤘던 이부자리에서 쓰잘머리 없는 장황한 연대기가 펼쳐졌다.
듬성한 기록을 채워나가다 빈번히 등장하는 두 단어가 뇌리에 걸렸다. 하나는 부대신문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박근혜였다. 다소 기분이 상했음에도, 궤를 같이 하는 둘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허세 가득한 객기로 편집국에 발을 들인 것이 지난 대선 직전이었고, 기사를 처음 쓸 때가 당선 즈음이었다. 대통령의 임기 첫해가 기자로서의 1년이었고, 마우나리조트 참사 이후 정책이랍시고 ‘우리’를 탄압할 때 정기자 생활을 마무리했으며, 진도 앞바다를 눈물에 잠기게 했을 때가 편집국장이었다. 잠시 편집국을 떠나있을 때에도 ‘정윤회’나 ‘위안부 합의’ 따위에 분노하게 했고, 간사가 됐더니 최순실이 등장했다. 필자 인생에서 가장 빼곡했던 ‘기자’라는 한 장이,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였다.
참 아이러니하다. 경멸해 마지않는 사람이 어찌 보면 은인이기도 하다. ‘정치’라는 단어에 정체모를 위압감을 느끼던 스물 둘이었는데, 이제는 주구장창 정치 운운하는 스물 일곱이다. 모두 대통령 덕이다. 정치가 무섭다는 거나, 투표가 중요하다는 걸 대통령 덕에 깨달았다. 정치인의 수사나 정책에 의심을 품을 수 있게 된 것도 그의 덕이다. 추악함의 극을 몸소 실천해줬기에 의심의 폭 또한 비대해졌고, 일종의 면역도 생겼다. 덕분에 정치가 결코 어렵거나 멀지 않고, 우리의 일이라는 것 역시 뼈저리게 느꼈다. 무엇보다 잊어선 안 될 세월호를, 잊을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줬다. 분노와 비례하는 고마움에 미묘한 감정이 드는 모양이,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제는 시험에 떨어진 친구와 술을 마셨다. 평소 정치 얘기라면 고개를 젓던 친구들이, 필자가 쓴 글을 보여 달라더라. 술기운에 딱히 부끄럼 없이, 민낯과 다름없는 글들을 펼쳐보였다. 그에 대해 시시콜콜 얘기하며 웃기도 또 화내기도 했다. 그러곤 찬바람을 맞으며 집에 돌아갔다. 조금씩 나이가 들어간다는 생각에 괜히 감상에 젖다가도, 우리 모습이 딱히 달라진 것 없다는 생각에 웃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낙제를 달래러 간 자리에서 나라에 혀를 차는 우리가, 반강제적으로 누군가를 욕하고 있는 우리가 조금 슬프기도 했다.
아니, 사실 억울하다. 짝사랑은 상대를 변화시킬 수 없기에 힘들다던데, 필자가 딱 그 꼴이다. 대통령은 변한 것 하나 없는데 필자만 오달지게 변하고 있다. 한 장이 펼쳐지는 4년 동안 수편의 글을 썼지만 닿지 않았다. 이 빼곡한 장은 곧 닫힌다. 와중에도 국회는 대통령의 담화 따위에 놀아나고 있고, 우리는 우롱당하고 있다.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았고, 촛불은 여전히 밝다. 필자만이 아닌, 우리의 이 지독한 상사병이 이제는 끝났으면 한다. 전 재산이 28만원이라던 어느 치 마냥 치졸하고 끈덕지지 않기를, 부디 다음 장에선 조우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네 번째 ‘마지막 마감’을 보내는 밤이다.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