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곱창에 소주 한잔했다.

 
  “넌 언제 졸업하고 언제 돈 버냐?”. 친구의 말에 나는 조금 ‘욱’했다.
 
  “철수는 멀쩡한 대기업 때려치우고 원래 연봉의 절반도 안 주는 건축사무소 가서 자기 와이프랑 애는 어쩌려고…”. 철수는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다며 대기업에서 건축사무소로 재취업을 했다.
 
  “야 너처럼 안정적으로 사는 거 솔직히 부러울 때도 있다. 근데, 난 몇 살 전에 취업, 몇 살 전에 결혼을 해야 한다는 그런 사회적 통념에 따라 사는 것보다 나이 생각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연구하면서 살고 싶다. 철수도 대기업보다 연봉은 낮지만, 설계 일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데, 니가 그리 말하면 안 되지. 네 가치관도 틀리지 않지만 우리 가치관도 틀린 건 아냐”.
 
  어쩌면 흔히 볼 수 있는 대화일 수도 있다. 나는 27살에 부산대에 입학했고 현재 박사과정 중에 있다. 남들보다 늦은 대학생활을 하다 보니 동생들이 진로 문제에 대해 묻곤 했다. 그들에게 “내가 뭔 충고를 해주겠냐만…그냥 널 가슴 뛰게 하는 일을 찾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많이 해보고 외국에도 가보고 네가 행복한 직업을 선택해. 적어도 나는 말년에 골프 치면서 ‘사장님 나이스 샷!’ 소리 듣는 게 그다지 행복할 거 같진 않다”고 말했다. 
 
  도서관에서 많은 이들이 공무원, 전문대학원 및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 중 일부는 (물론 소수겠지만) 직업적 소명의식을 가진 꿈보다는 안정적인 ‘사’자 직업과 ‘철밥통’ 을 원하는 거 같다. 그건 어떤 일을 하고 싶다는 것보단 먹고 살 수단을 원하는 게 아닐까?
 
  안정적인 삶을 사는 게 본인 가치관이라면 비난할 생각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정말 중요하다. 나도 ‘페라X’ 갖고 싶다. 취업해서 결혼하고, 자식새끼 자랑하는 친구들 부러울 때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어떤 삶이나 가치관이 옳고 더 낫다는 것이 아니다. 그 삶을 선택한 이들은 그 삶에서 행복을 느끼기에, 이 삶을 선택한 이들은 행복을 느끼기에 선택한 것이니 자신의 가치관대로 선택해서 살자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인생과 가치관이 옳으니 함부로 타인의 삶에 훈수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삶을 선택했다면, 그게 인생의 답인 것 같다.
 
  덧붙이자면, 사회의 멘토라는 이들처럼 ‘타인의 눈치 보지 말고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세요.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 일을 하다 보면, 분명 사회적 성공을 하게 됩니다’라고 자신 있게 아름다운 미래를 장담하지는 못 하겠다. 사회적 통념에 따라 안정적인 삶을 선택한 내 친구의 미래가 더 행복할 수도 있다. 그런 삶에서 행복을 못 느끼는 나는 말년에 그 친구에게 돈을 꾸러 갈지도 모른다. 등가교환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있다. 분명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잃어버리는 것들도 있겠지만, 내 선택에 책임을 지고,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최선을 다했다면 나는 무덤에 들어 갈 때 스스로에게 ‘나름 인생 재미있었다. 수고했어’ 라고 해 줄 수 있을 거 같다.
 
  이런 글을 쓸 ‘퀄리티’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기회가 생겨서 내 개똥철학을 두서없이 써봤다. 그리고 문맥상 급변, 지나친 확대일 수도 있지만…. 감히 한마디 더 하자면, 타인의 가치관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는다면 직업, 연봉으로 급을 나누는 일 따윈 없지 않을까? 그리된다면 부르주아, 프롤레타리아, 대한민국의 상위 1%라는 말 따윈 사라지고 자신이 하는 일에서 행복감을 느끼며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몽상을 해본다.
 
조정현(분자생물학 석사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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