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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권하는 사회
  • 오선영 소설가
  • 승인 2016.12.05 01:29
  • 호수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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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1년 <개벽>에 발표된 현진건의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는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삯바느질로 겨우 생계를 꾸려 나가는 아내는 동경에서 유학까지 하고 온 남편의 모든 것이 자랑스럽다. 결혼한 지 7, 8년이 되었지만 함께 산 것은 1년 남짓. 남편이라고는 하나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해 본 적 없고, 같이 밥을 먹은 일도 드물다. 하지만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남편은 아내의 자랑이며 전부다. 요즘 들어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아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늘어놓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자세히 들어요. 내게 술을 권하는 것은 홧증도 아니고 하이칼라도 아니요,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이 조선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알았소? 팔자가 좋아서 조선에 태어났지, 딴 나라에 났다면 술이나 얻어먹을 수 있나… ….”
  누가 술을 권하냐는 아내의 질문에 남편은 위와 같이 답을 한다.
  식민지 조선의 암울한 현실 앞에서 지식인 남편은 무력하기만 하다. 마음이 맞는 이들과 ‘민족을 위하여’, ‘사회를 위하여’ 무언가 해보자 하지만 며칠 되지 않아 ‘명예싸움’, ‘쓸데없는 지위 다툼질’로 끝이 나고 만다.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에 저항하는 방식은 술을 마시며 울분을 터트리거나, 제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아내를 외려 타박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뿐이다.
  이 사회가 술을 권한다는 남편의 대사는 2016년 오늘날의 현실에도 묘한 울림을 자아낸다. 지독한 경제난과 바늘귀보다 좁다는 취업 문, 벼랑 끝에 내 몰린 20대들은 스스로를 ‘3포 세대’라 부르고, 명예퇴직·권고퇴직의 이름으로 40·50대들은 거리로 내 몰리고 있다. 이런 답답한 현실 속에서 드러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노력하면 이뤄진다는, 부족한 건 나의 ‘노력’이지 ‘빽’이나 ‘돈’이 아니라 믿으며 오늘 하루도 충실하게 살아가던 ‘흙수저’ 인생들에게 이곳이 정말 ‘헬조선’ 임을 다시 한 번 각인 시켜준 사건이라 하겠다. 아니, 우리들에겐 헬조선인 이 땅이, 그들에게는 ‘천국’이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이나 하듯 통계청에서 발표한 올 2분기 자료에 따르면 가계의 전반적인 소비가 줄고 있는 데 반해 술과 담배의 지출은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의 식비, 의료비, 사교육비 등이 모두 감소했지만 술과 담배의 지출은 전년 동기 대비 7.1% 늘어났다고 한다. 편의점 씨유(CU)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6일까지 약 열흘 동안 소주 매출은 전년 대비 25.4%나 급등했다. 지속되는 경기침체와 연일 터지는 정치적 사건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술로 근심과 시름을 달랜 것이다. 그야말로 ‘술 권하는 사회’라고 하겠다.
  현진건 소설 속 남편은 식민지 조선이 술을 권한다고 하면서도 여타의 행동을 하지 않는다. 삯바느질로 힘겹게 생활을 이어나가는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제게 용돈을 주고 생활비를 대주는 아내를 비웃을 뿐이다. 하지만 소설을 쓴 현진건은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근무하던 중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1년간 옥살이를 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붙은 일장기를 지우고 신문을 발간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술 권하는 사회에 대한 회심의 반격으로 강력한 잽(jap)을 날린 것이라 하겠다.
  오늘날의 시민들 또한 술을 마시며 부조리한 세상에 삿대질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끝내지 않고 있다. 주말마다 광화문으로, 서면으로, 부산역 광장으로 모여든다. 술병을 내려놓고 작은 촛불을 든다. 울분과 좌절만으론 이 시국이 끝나지 않을 것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 술을 권한, 술을 마시게 한 이 나라를, 다시 한번 내 손으로, 우리의 힘으로 바꾸려 한다. 그래서 ‘당신들의 천국’이었던 이곳을, 상식이 통하는 ‘우리들의 일상’으로 바꾸려 한다. 내 손에 들린 소주잔이 독배가 아니라 ‘축배’가 되는 날이 어서 오기를 고대한다. 

   
오선영 소설가

 

오선영 소설가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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