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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일 하고 싶었다
  • 김민관 대학부장
  • 승인 2016.12.05 01:24
  • 호수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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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비전으로 내세우며 출범한 국가기구가 있다. 한국 최초의 국가인권기구인 국가인권위원회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기본적 인권보장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고 나아가 민주적 기본질서를 확립하겠다는 목표 아래 10여 년간 달려왔다. 그곳에서 인권이 삶의 가치가 되는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대구인권사무소 김태은(법학 98, 졸업) 인권조사관을 만나봤다.

   
 

△대학에 다닐 때는 어떤 학생이었나?
  대학생활에서 특별히 기억나는 일은 없다. 주로 사회단체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과 교사들의 집단 해고가 벌어진 얼마 후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자연스럽게 고등학교 때부터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대학에 와서 새로운 뭔가를 알게 되진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대학 밖에서 더 많은 것을 알았지.

△법학을 전공했는데 법조인이 될 생각은 해보지 않았나?
  당연히 해봤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하지 않나. 주변에서 다들 사법고시를 준비하니 자연스럽게 같이 공부 했었다. 하지만 솔직히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단히 만족하지만, 만약 학교 다닐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공부를 좀 열심히 해서 법조인이 되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든다.

△전공을 살리지도, 사회단체에 남지도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는 어떻게 들어오게 됐나?
  인권위에 들어오기 직전에는 노동조합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안하원 목사를 알게 됐다. 빈곤운동, 노동운동을 하던 분이셨는데, 그가 인권위 부산인권사무소가 생긴다고 말해줬다. 그전까지는 인권위에서 일할 마음이 없었다. 인권위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때가 한창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에 대한 명예회복 운동이 활발하던 때였는데, 정부의 태도가 몹시 소극적이었다. 어떻게든 민주화운동 관련자의 범위를 좁히려고만 했다. 그 과정에서 인권위가 별다른 일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인권위도 똑같은 국가기관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하고 싶었던 일은 있었다. 개별 사회단체들은 정말 열심히 일한다. 단체 활동가들이 개인의 생계도 양보하면서 운동에 투신했다. 그런데 단체 간의 연대는 말만 쉽지 잘 이뤄지지 않았다. 힘을 얻으려면 연대가 필요한데, 연대를 추진할 동력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랬더니 여성이든 장애인이든 모두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사람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연대가 가능하지 않을까, 결국 사람에 대한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안 목사가 ‘그렇다면 인권위가 어떻겠느냐’며 국가기관이라고 해도 인권위는 좀 다를 거라는 말을 해줬다. 그래서 인권위에 지원했고 운 좋게 합격해 2005년 9월 1일부터 근무를 시작했다.

△직접 일하게 된 뒤로 인권위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나?
  어떤 조직이든 겉으로 비춰지는 것과 내부에서 일하는 것은 다르다. 인권위 조사관들은 어떤 이념에 대해 조사하고 평가하지 않는다. 당사자가 인권침해를 받았는지의 여부만을 조사한다. 그 사람의 신념과 무관하게 인권을 침해받았다면 인권침해라고 발표하는 것이다.
  하지만 남들은 그 사람이 어떤 신념을 가졌는지에 따라 인권위가 보수적이다, 혹은 인권위가 좌파다 이렇게 평가한다. 막상 일을 해보니 대외에 비춰지는 이미지는 인권위의 의도와 무관한 경우가 많았다. 위원장이 바뀔 때 마다 외부에서 느끼는 인권위의 성향은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안에서 일하는 조사관들은 똑같다. 나 역시 2005년부터 지금까지 똑같은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인권위가 어떤 기구인지 조금 더 설명해 달라.
  인권위는 크게 4가지의 특징을 가진다. 우선 독립기구다. 처음 인권위가 생기던 당시 독립성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다. 정부는 법무부 산하에 두려고 했지만 시민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우리의 역사에서 가장 많은 인권침해를 가한 당사자가 바로 국가 아닌가. 그래서 결국 독립기구로 만들어지게 됐다.
두 번째 특징은 인권전담기구라는 점이다.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교육 △홍보 △교류협력 △제도개선까지 관련한 전반적인 업무를 담당한다.
  한편 이러한 역할을 위해 준사법기관으로서의 특징도 지닌다. 차별이나 인권침해행위를 직접 조사해야 하기 때문에, 조사관에게는 자료제출을 요구하거나 현장에 방문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마지막으로 준국제기구의 성격을 지닌다. 분명 인권위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국내기구다. 하지만 여러 국제기구의 회원으로 참여하며 결정된 사안들을 국내에서 이행하는 역할도 한다.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언제인가?
  부산인권사무소가 2005년 개소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이다. 연말이었는데 20대 후반의 여자 두 분이 찾아왔었다. 부산지역 모 사립대학의 직원이었다. 그 학교는 여성이 30세가 되면 사직서를 내야 한다고 하더라. 게다가 결혼을 하면 자동 퇴사였다. 그게 관행이었다. 한 분은 청첩장을 돌렸더니 상사들의 반응이 ‘축하한다’가 아니라 ‘이제 얼굴 못 보겠네’였다고 토로했다. 아무래도 이건 부당한 것 같다며 진정을 접수했다. 한창 조사가 이뤄지던 과정에 그분들이 전화를 주셨다. 굉장히 기쁜 소식이었다. 인권위에서 조사에 착수하니 학교가 그 관행을 없애겠다고 약속했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그 학교에 노동조합까지 만들어졌다. 일을 막 시작했을 때 있었던 일인데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사실 인권위가 먼저 나서서 일하기는 힘들다. 매일 ‘오늘 인권침해 당하셨어요?’라고 물어보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인권위가 의미를 가지는 것은 사람들이 용기를 낼 때다. 어떤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고 참고 넘긴다. 그럼에도 인권위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문제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인권상담을 하면서 부당함을 호소하던 사람들도 ‘그럼 진정하시겠어요?’라고 물으면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무기명으로는 진정이 접수되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인한 불이익을 막아드릴 수는 없지만 중요한 변화에 도움이 될테니 용기를 내보시라’ 이렇게 권유하지만 엄청 마음에 걸린다. 진정에 따른 불이익은 오롯이 당사자가 안아야 하지 않나.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그런 용기 없이는 달라지는 게 없다. 그래서 진정인들이 참 고맙다. 그분들을 만날 때 마다 보람을 느낀다.

△앞으로 인권위에서 이루고 싶은 것이나 목표가 있다면?
  사람들은 인권이 두루뭉술하다고 말한다. 삶이라는 게 변화무쌍하지 않나. 모든 사람이 다른 생각과 욕구를 가지고 있는데 그걸 하나로 정의하는 건 어렵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두루뭉술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인권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꾸 하나로 정리하고 정의하고 싶어 한다. 인권이 명확히 내손에 잡혀야 실천해보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아직까지 인권을 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인권이 바로 나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알아야 나의 권리를 누릴 수 있고 알아야 타인의 권리를 함부로 침해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문화가 달라졌으면 좋겠다. 사람이 서로를 존중하는 것. 머릿속에서 혐오의 감정이 떠오를지라도 그걸 내뱉지 않는 것. 그게 사람 간의 예의지 않나. 많은 사람들이 인권을 삶의 가치로 받아들이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

△개교 70주년을 맞은 우리 학교와 후배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막막하다. 꿈을 가져라? 일단 취업이 돼야 다른 생각을 할 것 아닌가. 설사 꿈을 가진다 해도 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누군가의 자녀로써 기대와 역할을 부여받고 있을 텐데 그걸 무시하고 하고 싶은 걸 잘해보라고 말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선은 응원의 말을 전하고 싶다. 힘내라고. 또 엄청 고리타분하지만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하고 싶다. 힘을 얻고 지치지 않을 방법은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다.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부산인권사무소에서 일하던 시기 부산대가 인권위와 인권연구거점대학 MOU를 체결했었다. 그때 부산대 출신이라는 사실이 참 뿌듯했다. 학교가 먼저 나서서 인권을 과제로 받아 안아보겠다고 했던 것이 정말 기뻤다. 인권위에서는 삶의 철학으로서의 인권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삶의 방향이자 목표가 인권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사람은 언제나 목적이다. 절대 수단이 될 수 없다. 학교와 후배들이 세상을 항상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으면 한다.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의 상담실. 많은 사람들이 인권침해를 호소하며 인권상담을 받지만 실제 진정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그보다 적다
   
 

김민관 대학부장  left0412@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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