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부대신문>이 창간 62주년을 맞이한다. <부대신문>의 역사는 학생자치의 과정이기도 하다. 대학설립 8년 뒤인 1954년 <부대신문>이 간행되니, 학생이 주체가 된 대학언론자치도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이후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진척정도에 따라 <부대신문>의 독립성과 자율성에도 많은 부침이 있었다.

<부대신문>이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대학신문의 모범이라는 위상을 다져온 것은, 신문사를 거쳐 간 학생기자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들의 투지와 사명감이 없었다면 서슬 퍼런 독재정권의 검열을 극복하고 쌓아올린 자주전통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여기에 든든한 지지자로서 모든 효원가족들의 후원 또한 필수적이었다.

당면한 문제는 대학언론의 현실이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대학신문의 공통적인 어려움이자 가장 큰 고민은 기자 지원자의 감소이다. 취업이 최대 과제이다 보니, 학생들은 대학생활 내내 이 문제 외에는 다른 곳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는 것이다. 두 번째는 <부대신문>에 대한 구성원들의 구독열의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부대신문>도 급변하는 상황을 반영하여 내용과 판형에 변화를 주고 홈페이지를 개설하였지만, 소속감의 희석과 인터넷 매체의 홍수로 인해 대학인들이 학내소식에 상대적으로 소홀해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언론사 재정의 축소이다. 해마다 열악해지는 국립대 재정은 언론사 예산의 축소로 이어지고, 이는 그만큼 대학언론 활동이 위축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학생자치의 또 다른 축이 총학생회인데, 대학언론보다 더 위기에 처한 곳이 이 총학이라 여겨진다. 가장 큰 문제는 총학에 대한 구성원들의 무관심일 것이다. 매년 학생회장 후보가 한두 명에 거친다는 사실이 이 점을 잘 말해준다. 그나마 경선을 하는 것이 다행일 정도로, 학생회장을 하겠다는 사람이 드물다. 이런 사정은 곧바로 상황악화로 나타난다. 총학집행부 구성에 분명한 원칙도 없고, 운영에 있어서도 감시와 견제가 소홀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전임 학생회장이 다시 총학간부가 된다든가, 예산지출 감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정해진 기한 내에 이뤄지지 않는 것 등이 총학의 지리멸렬한 현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몇몇 큰 사회적 이슈에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총학의 존재이유를 찾는다면, 본업은 팽개친 채 대단히 과시적인 곳에만 총학의 임무를 두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총학운영을 각 단대학생회와 협의아래 민주적으로 행사하고, 예산의 집행은 누가 보더라도 투명하게 집행하고 그 결산 또한 그렇게 공개되어야한다. 이런 내부의 일상적 업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총학의 외부활동은 자체 모순을 감추기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끔찍한 소리가 ‘기성세대의 구태를 답습한다’라는 비난이 아닌가. 사회에 나가기도 전에 애늙은이라는 비난은 받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직은 일부 사립대학에 국한되고 있지만, 부패한 학생자치기구의 문제는 소수의 학생회장과 집행부에게만 그 운영의 책임을 맡겨놓고 무관심한 결과이다. 결국 학생자치의 존립은 학생 모두가 주인이자 참여자라는 인식을 가지고 참여할 때 가능하고, 젊음의 패기가 살아있는 상아탑도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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