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설행'

  세상 누구나 춥고 외로운 길을 걸어가야 할 때가 있다. 특히 그 길을 나만이 걷고 있다고 생각할 때, 고독함은 배가 된다. 영화 <설행_눈길을 걷는다>는 그런 사람들에게 정우(김태훈 분)과 마리아(박소담 분)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위로를 건넨다
  한적한 시골의 버스 정류소. “나 혼자 갈 수 있어. 걱정하지마”라며 어머니를 다독이는 정우의 모습이 포착된다. 알코올중독자인 정우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에는 불안이 가득하다. 거듭 어머니를 안심시킨 후에야 정우는 목적지로 향할 수 있게 된다. 그의 목적지는 수녀원 ‘테레사의 집’. 그는 알코올 중독 증세를 치료하기 위해 이 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술의 유혹과 금단증상으로 인한 환각으로 고통스러워한다. 이런 그를 수녀 마리아는 까닭 없이 챙기고 보살핀다. 정우는 자신에게 호의를 베푸는 수녀에게 계속 눈길이 가게 된다.
  어느 날 정우와 마리아는 수녀원의 무단 외출을 감행하게 된다. 그들은 초상이 치러지고 있는 집에 도착한다. 그 집은 마리아의 본가로, 죽은 사람은 그녀의 어머니였다. 그날 밤, 차 안에서 마리아는 정우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마리아는 무당의 딸로, 빙의가 가능했다. 때문에 그녀의 어머니는 신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고, 마리아는 이를 버티지 못해 집을 나와서 수녀가 됐다. 그러나 집을 나왔던 날이 어머니와의 마지막 만남이게 될 줄은 몰랐다.
  자신의 이야기를 마친 후 마리아는 정우에게 왜 술을 마시냐고 묻는다. 정우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냥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이었고, 그에 따라 자신도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이러한 정우의 답변에 마리아는 “아저씨를 위해서도 늘 기도하고 있다”며 “사람들은 모두 따로 떨어진 점이래요. 성모님은 그 점들을 선으로 이어주신데요. 그렇게 제가 원장 수녀님과 만나고, 아저씨와 제가 만나게 된 거에요”라는 말을 전한다.
  영화는 시간 순이 아닌 정우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래서 알코올 중독자가 겪는 하늘이 붉어지거나, 도로가 휘어지는 환상들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그런데 정우의 눈으로만 보이는 환각이 환상의 끝이 아니었다. 이후 정우는 자신의 어머니조차 환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버스 정류소에서 아들을 걱정하던 어머니조차 그의 환상이었다. 알코올로 가리고 싶었던 고통스러운 진실들이 드러나면서, 정우는 자신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다는 죄책감과 마주하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마리아는 수녀원을 떠나고 정우는 마리아가 남긴 노트를 건네받게 된다. 그곳에는 무수한 점이 무수한 선으로 이어져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마치 이전에 마리아가 했던 말을 표현한 것 같다. 이후 정우는 눈발이 서리는 길을 홀로 걸어간다. 아직 춥고 외로워 보인다. 하지만 마리아라는 ‘점’이 정우의 ‘점’에 이어지면서, 오로지 그만이 괴로운 길을 걷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됐다. 그래서 정우는 더 이상 술에 의존하면서 눈길을 걷지 않을 것이다. 나만이 걷고 있는 길은 없다. 누군가는 그 길을 지났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눈길을 먼저 걷고 있는 정우와 마리아의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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