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의 진흥을 위해 모금된 문화예술기금이 고갈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대안으로 마련된 일부 사업을 지역발전특별회계로 이관하는 방법 역시 적절하지 않아, 문화예술계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소진될 위기에 처한
문화예술진흥기금

  문화예술진흥기금(이하 문예기금)은 △문화예술의 창작과 보급 △문화예술인의 후생복지 증진 △소외계층 문화향유 기회 확대 등 문화예술진흥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설치된 기금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관리하여 사업을 진행한다.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에 근거해 설치된 기금으로, 한국문화예술위훤회가 관리하여 사업을 진행한다. 문예기금은 공연장, 전시장 등의 입장료의 일부를 징수하고, 이후 국고, 방송발전기금 등을 대규모로 편입하면 큰 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 기금 모금이 활발했던 2003년까지의 적립금은 약 5천억 원을 넘기도 했다.
  그러나 2004년 이후 문예기금 원금은 연평균 300억 원씩 줄어들어, 내년에는 완전 소진될 위기에 놓였다. 적립금은 고정 수입원이었던 전시장 등의 관람료를 더 이상 징수할 수 없게 되면서 소진되기 시작됐다. 2003년 한 공연기획자가 전시장 등의 관람료의 일부를 문예기금으로 모금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법률심판을 제청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공연 등을 관람하는 일부 국민들만이 문화예술의 진흥에 집단적으로 책임을 부담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며 위헌을 결정했고, 이로 인해 관람료에서 문예기금을 더 이상 모금할 수 없게 된다. 적립금은 줄어들고, 금리까지 낮아진 지금은 단순이자액만으로 문예기금 사업비를 충당할 수 없게 됐다.
  이후 문예기금의 부족분을 보완하기 위해 2004년부터 복권기금이 투입되고, 2010년부터 경륜경정 수입금 중 일부가 전입되기 시작했다. 또한 내년에는 국민체육기금과 관광진흥개발기금에서 각각 500억 원이 출자된다. 그러나 보완책들도 적립금의 소진을 막을 수 없었을 뿐더러, 사용의 한계까지 있었다. 일례로 2004년부터 문예기금을 충당해온 복권기금은 본래의 목적성에 따라 소외계층을 위한 사업에만 쓸 수 있다. 한국문화예술경영연구소 이용관 소장은 “복권 수입금이 갖는 역진성 때문에 해당 기금은 저소득층을 위해서 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다른 기금들도 마찬가지로 기금 목적에 따른 사업에만 편성이 가능하다. 또한 다른 대체재원들도 한시적으로 문예기금 사업비를 충당할 뿐, 적립금 소진을 막을 수는 없다. 박신의(경희대 문화예술경영학) 교수는 “다른 기금으로 충당하는 것은 지출하면 끝나기에 안정된 기금 운용이 아니다”라며 “사업비를 지원하는 식의 운용은 문예기금의 자율성 또한 훼손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예기금이 고갈되는 와중에 부실 투자로 200여억 원의 평가손실까지 보게 돼 더욱 위기를 맞기도 했다. 문예기금의 여유자금 금융상품 투자원금 1,243억 3천만 원의 실제 평가금액은 1,041억 2천만 원으로 202억 원의 손실을 기록한 것이다. 지난 9월 국민의당 송기석(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의원은 국정감사를 통해 ‘200여 억원의 투자 손실은 심각한 기금 고갈 위기에 처한 문예기금의 안정적인 운용에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다’며 ‘문예기금의 여유 자금을 환수해 문화예술의 진흥을 위한 부문에 사용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지원의 축소로 이어진
문예기금 고갈

  문화예술계 관계자는 이러한 기금 고갈은 문화예술가들의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한다. 문화연대 최준영 사무처장은 “당장 문화예술가들의 활동 위축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도 지속적인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며 “특히 신진예술가와 단체들이 초기 진입장벽을 넘는 것의 어려움이 더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산 지역 문화예술가들은 문예기금이 고갈되면서, 관련 사업이 축소되는 것을 이미 체감하고 있었다. 지역문화지 <안녕광안리> 이여주 편집장은 “비수도권의 문화잡지 지원이 점점 적어지고 있다”며 “<안녕광안리>도 기존의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돼, 내년부터 휴간을 결정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에 문예기금이 고갈될 때까지 방치한 정부의 책임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2003년 기금 모금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행정·법률적으로 보완책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문화정책연구소 김기봉 상임이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예기금이 고갈 위기에 처했음에도 기금 운용에 관한 고민을 하지 않았다”라며 “문예기금의 사용 방향보다 일단 쓰고 보자는 식이었다”고 지적했다.

 

 

지역발전특별회계 두고
시선 엇갈려

  문예기금 고갈의 해결 방법으로 정부는 문예기금 사업 중 ‘지역협력형 사업’의 비용을 지역발전특별회계(이하 지특회계)로 이관하는 것을 결정했다. 지역협력형 사업은 지역문화재단이 지역 예술단체와 예술인의 순수 예술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예기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부산문화재단도 지역문화예술특성화지원사업으로 해당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11억 7천만 원의 문예기금을 사용하고 있다. 만약 이 사업이 문예기금에서 지특회계로 이관되면, 지역문화재단이 아닌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가 사업비의 주체가 된다. 이러한 예산안은 오는 12월 국회 통과만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지특회계 이관은 문화예술계의 큰 반발을 불렀다. 지자체에 예산이 이관되면 그들의 영향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플랜비문화예술협동조합 이승욱 상임이사는 “지특회계 예산이 지역협력형 사업에서 사용되던 방향으로 쓰일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며 “지자체의 입장에 따라 예산의 사용이 좌지우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자체의 발언권이 강해지면 본래 지역협력형 사업이 추구하던 기초문화예술 분야의 진흥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김기봉 상임이사는 “지자체장들은 유권자들을 의식하는 주체”라며 “예술인은 소수이기 때문에, 생활문화예술 동아리 지원, 시설 건립 등 다수의 일반 유권자가 체감할 수 있는 사업 위주로 지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특회계 이관은 근본적인 해결책도 아닐 뿐더러, 자율성과 독립성을 훼손할 여지가 큰 방법인 것이다.
  그렇지만 당장 대체재원이 없는 상황에서 기금의 고갈로 인한 지역문화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지특회계로의 이관을 보아야 한다는 시선도 있다. 경기연구원 이현우 연구위원은 “지특회계로 사업들이 계속 진행되면 문제가 있을 수 있으나, 다른 재원을 마련할 수 없는 마당에 지특회계 이관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며 “지특회계에서 지역문화재단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포괄 항목을 개설하는 방법 등으로 안정적인 상황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지자체의 노력으로 문화예술가들의 걱정을 해소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부산문화재단 예술진흥본부 최윤진 팀장은 “지특회계의 특성 상 지자체장들의 정책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면이 있다”며 “하지만 지자체의 노력으로 해당 우려를 극복할 수 있고, 특히 부산광역시는 예술인에 대한 지원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전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문예기금의 재원 마련이다. 이용관 소장은 “이자, 투자로 기금을 운용하는 현재의 방식에서 변해야 한다”며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새로운 체계가 구성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이 문화예술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 연희단거리패 이윤택 예술감독은 “지자체에서 독자적인 예산을 집행한다면 지역문화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며 “하지만 지자체장이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제도적 기준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승욱 상임이사도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며 “지역분권 이면의 행정, 인사권 예속에서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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