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매우 혼란스럽다. 국민들로부터 직접 선출된, 민주적 정당성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누군가의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은 우리 헌정사에서 초유의 일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여러 가지 분석의 틀이 있을 것이나, 법률가인 필자로서는 대통령직에 있는 박근혜 씨에게 법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결여되어 국가권력의 공공적 성격을 오해하고 권력을 사유화한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본다.
가령 2014년 1월 6일 개최된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의 다음과 같은 발언을 보자. “그동안 우리 사회를 보면 불법으로 막 떼를 쓰면 적당히 받아들이곤 했는데, 진정한 소통을 위한 전제조건은 모두가 법을 존중하고 그 법을 지키고 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법이 적용되는, 집행되는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을 보면 박근혜 씨는 법치를 법을 잘 지켜야 한다는 의미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법치 = 준법’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든다. 첫째, 법치주의란 박근혜 씨가 말하는 바와 같은 의미인가? 둘째, 박근혜 씨 자신은 법을 지켰는가?
우선 첫째의 질문에 대하여 살펴보자. 원래 법치주의 개념은 국가권력의 행사는 의회가 만든 법률에 따라 행사되어야 하고 그 법률의 내용과 목적도 정의에 부합하여야 한다는 의미다. 즉 법치는 국민에 대한 것이 아니고 권력자를 향한 것이다. 그런데 법치가 이 땅에 이식되는 과정에서 권력에 대한 것이 아니고 국민들 법 잘 지키라는 준법정신 정도의 의미로 변질되고 만 것이다. 박근혜 씨가 이야기하는 법치주의도 이러한 왜곡된 개념에 터 잡은 것이다.
다음 둘째의 질문, 그렇다면 박근혜 씨는 자신은 법을 잘 지켰는가? 이번 최순실 사태로 밝혀진바, 가령 연설문 등 국가 중요문서를 민간인인 최순실에게 유출한 것, 대기업 총수들을 면담하여 돈을 갈취한 것 등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전혀 법을 잘 지키지 않았다. 사실 이 사태 이전에도 박근혜 씨가 법을 잘 지키지 않은 사례는 허다하다. 개성공단의 급작스런 폐쇄(여기에도 최순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국회에 대한 직권상정 압박, 세월호 특별법을 시행령으로 누더기를 만들어버리고 이에 대하여 국회법 개정을 시도하던 여당의 원내대표를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축출해 버렸다. 그 축출된 원내대표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제1조를 퇴임의 변으로 들었던 것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그런데 더 웃기는 일은, 이런 박근혜 씨의 모습이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야당의 대표로서 자신이 보여준 모습과 정반대라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원포인트 개헌 촉구에 대하여 나쁜 대통령이라 하고, 노무현 정부의 신문법 시행령 정책에 대하여 의회의 입법권을 무력화시키는 일이라 비난한 것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유체이탈의 모순된 행태인 것이다. 유신체제로 대한민국의 법치를 불구로 만들어버린 선친의 모습에서 박근혜 씨가 이해한 법치주의란 것이 결국 법은 국민이나 잘 지키는 것이고, 자신은 준법에서 면제된다는 이중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법치는 권력을 통제하기 위하여 고안된 원리이다. 또한 권력자의 자의적인 권력행사를 통제하지 못하면 나라의 중요한 정책도 권력자의 입맛에 따라 무력화된다. 개성공단 폐쇄는 그 단적인 예이다.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국민주권주의, 민주주의 원리도 따라서 법치주의가 정착될 때 실효적으로 보장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박근혜 씨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더는 지도력과 신뢰, 권위를 인정받을 수 없게 되었다. 박근혜 체제는 다양한 영역에서 반면교사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법률가로서 필자가 바라는바는 박근혜 이후 새로이 마련되는 대한민국의 리더십은 제발 법치주의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고, 이에 따라 자기 권력의 행사가 내용적으로나 절차적으로 법에 의하여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 권력의 자신의 사유가 아니라 국민이 잠시 맡겨준 공적인 것임을 철저하게 인식하였으면 하는 것이다.

이광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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