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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의 정신
  • 이주은 작가
  • 승인 2016.11.21 00:44
  • 호수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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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11월의 넷째 주 목요일이 되면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을 기념하는 성대한 축제가 벌어진다. 전국의 마트에서는 이미 셋째 주부터 냉동 칠면조가 동나기 시작하고, 당일이 되어 부랴부랴 장을 보려 하면 텅 비다시피 한 냉동고를 보며 망연자실하기 일쑤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칠면조, 버터의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옥수수, 달착지근한 으깬 고구마에 부드러운 호박파이까지, 미국 전통이라 자부하는 추수감사절의 진수성찬을 보면 누구라도 입맛을 다시곤 한다.
1620년 11월 11일, 청교도 신자들과 개척자들을 실은 메이플라워호가 미 대륙의 동해안에 나타나 정박했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 개척되지 않은 땅이라는 미 대륙으로 찾아온 이들은 오늘날에는 필그림 파더스(순례 시조)라고 불리며 미국을 만든 개척자들로 기억된다. 새로운 세상에서의 자유를 꿈꾸며 도착했지만 추위와 굶주림으로 인해 이들 중 거의 절반이 12월부터 2월 사이에 사망하는 등, 시작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그런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은 바로 예부터 이 땅에서 오래도록 살아왔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었다. 원주민들을 노예로 잡아가기도 하던 시절임에도 이들은 새롭게 도착한 필그림들에게 낚시, 비료 제작, 옥수수 재배, 사냥 등을 알려주었고 식량과 물건을 물물교환하기도 하며 결과적으로 필그림들이 자립하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시간이 흘러 다시금 가을이 찾아왔을 때, 이제 겨울을 날 수 있는 거주지와 식량이 준비된 필그림들은 음식을 원주민들과 나누어 먹으며 추수를 감사했다. 이것이 현재 추수감사절의 기원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며칠 전, 미국 대선은 많은 이들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내놓았다. 미합중국의 대통령직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는 그간 많은 차별적 언행을 해왔고 그가 당선되자 미국은 하룻밤 사이에 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악명 높은 백인우월주의 단체 KKK의 전 지도자이자 한 때 미국 나치 당원이었던 데이비드 듀크는 SNS에 “신이시여, 도널드 트럼프를 축복하소서! 이제 옳은 일을 해야 할 때다. 미국을 되찾을 때가 왔다”라고 글을 올리며 트럼프의 당선을 축하했다.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있던 여성은 트럼프 지지자들로부터 폭행당하고 물품을 도난당했으며 뉴욕 주의 웰스빌에서는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와 함께 “미국을 다시 ‘하얗게’ 만들자”라며 벽에 커다랗게 적은 글이 발견되었다. 흑인 아기 인형의 목에 밧줄을 두른 사진이나 누군가 남의 자동차에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000(인종 비하 단어)’라고 스프레이 페인트로 써둔 사진 등, 혐오 범죄의 수는 셀 수가 없이 많다.
미국은 하룻밤 사이에 둘로 나뉜 세계를 보여준다. 한쪽에선 수많은 혐오 범죄들의 증언이 쏟아지고 공포에 떠는 이들과 분노한 이들이 서로에게 부디 몸조심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다른 한쪽에선 남부 연합기를 벽에 걸어둔 백인우월주의자가 ‘우리가 이겼다, 다른 인종들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라’며 즐거워하는 동영상을 공유하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라는 트럼프의 구호를 외치고는 한다.
자유와 평등의 나라 하면 미국이라고 말하던 때가 있었다.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이민자들이 모여 만든 정의로운 민주주의 국가라고 자랑스러워하던 미국이 이제는 자신들의 나라를 되찾겠다고 말한다.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되찾겠다는 말인가? 언제부터 미국이 백인의 국가였는가? 이 땅을 되찾고 싶다는 말은 유럽에서 이민 온 이들의 후손이 아니라, 갑자기 나타났던 개척자들로 인해 고향에서 내쫓기고 차별받고 학살당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던가.
차별 없이 자유로운 세상을 그리며 ‘나에겐 꿈이 있다’고 말하던 마틴 루터 킹의 연설이 세계인들의 마음을 울린 지 이제 고작 53년이 지났다. 문화와 언어가 달라도 함께 앉아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삶에 감사했던 추수감사절의 정신은 어디로 갔는가. 피부색이 달라도, 종교가 달라도, 문화가 달라도, 누구를 사랑하든, 성별이 무엇이든 우리 모두는 평등한 사람인 것을.

   
이주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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