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늦가을 교정은 고운 단풍 천지였다. 아마도 끝 모를 세상의 분노와 서러움이 스며서 삭혀놓은 것일까?갑자기 혁명처럼 다가온 조락(凋落)의 숲을 곁에 두었던 청춘들은 처절하게 슬프고 아팠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느낌과 사연을 시 안에 담아 놓았다. 그래서일까?응모작을 읽는 심사자들은 남에게 알려지지 않은 시심을 들춰본다는 기쁨과 함께, 그들의 시에 담긴 감정의 무게에 버거움을 느꼈다.
  무엇보다 올해 응모작은 풍성했다. 무려 215편의 시를 읽는 내내 지난 수년간의 다소 빈약했던 응모작 수에서 가졌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심사자들은 토론 끝에 <사막의 스프린-터>를 당선작으로 추천한다. 이 시는 무한경쟁의 레이스에 몰려 가쁜 숨을 쉬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뛰는 스프린터에 청춘을 비유한 수작이다. 무미건조한 듯한 감정으로 조용히 응시하는 시인의 시선이 희망적인 데 닿아있음이 감동을 주었다. 스프린터는 황량한 사막 속 생존질주에서 총명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어쩌면 시인은 청춘에게 가해진 사회의 폭력과 그 앞에서 굴하지 않는 청춘을 보여주려 했는지 모르겠다. 사실 청춘은 무기력하지 않다.
  그리고 <수담(手談)>을 가작으로 추천한다. 합죽선을 그린 영물시(詠物詩)인데, 부채를 펴는 행위를 세상과의 만남, 우주의 포용으로 읽어내고자 했다. 꽃을 피우듯 열리는 부챗살 안에서 삶을 담아내려는 시도는 격려 받아야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4연에서 우주로의 확장이, 갑작스러운 것이 시상의 단절을 가져온 것은 아쉽다. 비록 시는 상상력에 바탕을 둔 비약을 허용하지만 그 안에 와 닿는 맥락을 오롯하게 담아야 한다. 즉 시적 논리에 기반하지 않는 상상은 허망한 공상으로 흐를 위험이 있는 것이다.
  선정작 이외에도 심사자들의 눈을 끄는 작품들은 많았다.(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일일이 제목을 거론하지 않는다. 예비 시인들과 독자의 양해를 부탁드린다.) 자아를 오롯이 성찰하거나 일상의 풍속을 포착하며, 가족을 그리워하거나 연인과의 아픔을 그리며, 자연을 빗대 인간의 어리석음을 노래하거나 재해가 안겨준 경계 등 다양한 주제가 출현하였다. 그러나 이유를 알 수 없는 영탄이나 현상의 스케치에 머물고, 실존적 시대적 성찰 없는 독백과 비약이 주조를 이루었다. 상상력은 삶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바탕으로 할 때 위력을 발휘한다. 이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끝으로 시를 많이 읽고 많이 느끼자. 그리고 쓰자. 누군가의 비평도 귀를 기울이자. 영화키드가 영화감독이 되듯, 시광(詩狂)이 시인이 된다는, 아주 단순한 상식을 인정하도록 하자. 모든 이들의 건승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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