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의 영화에는 없고 한국 영화에만 있는 특이한 자막이 있다. 한국 영화는 오프닝 크레딧이 시작되면 먼저 배급사 로고가 뜨고 제작사 이름이 뜬다. 그리고 투자한 사람들의 이름들 다음 감독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영화는 시작된다. 그렇다면 외국의 영화들은 어떨까. 익숙한 배급사의 로고가 먼저 뜨고 다음 제작자의 정보를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된다. 한국영화처럼 ‘누가 투자를 했다’는 정보는 주지 않는다. 사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영화에 누가 투자했는지는 알 필요가 없다. 이는 단지 작가가 아닌 ‘자본이 예술을 하는 시대’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장르를 가리지 않고 즐기는 필자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상영관에서는 거대 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나 상업 영화만 접하게 된다. 멀티플렉스 상영관의 상영시간표는 대부분 화려한 캐스팅과 빵빵한 배급사의 영화들이 황금시간대를 채우고 있다. 이런 상업 영화는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눈이 즐겁지만 집에 와서 되새겨보면 배우의 연기에 대한 기억만 남을 뿐이었다. 대부분의 영화가 비슷비슷하게 느껴져 어떤 영화를 봤는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한 명의 관객으로써 멀티플렉스 사의 스크린 독점으로 인한 영화 선택의 폭이 줄어든 것에 이미 불만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흔히들 대작이라고 불리며 흥행하고 있는 영화들은 다른 영화보다 작품성이 더 뛰어나서 그런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일까 · 그것은 아니다. 다른 소규모 자본의 독립 · 예술 영화들은 상영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지 않았던 것이다. 영화계 관계자들은 우리나라 영화산업이 대기업 멀티플렉스들은 영화 관람객들의 수요를 공정하게 측정하지 않고, 우선 공급의 양을 늘려 수요를 결정짓고 있는 왜곡된 형태임을 지적한다. 소비자들은 스크린을 독점하고 있는 영화를 대세라고 생각해 관람하고 판단은 나중에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관객들의 선택과 수요가 아니라 대기업의 선택으로 영화 제작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영화 장르선택의 폭이 감소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대기업의 수직계열화 때문이다. 거대 멀티플렉스사들이 상영과 배급을 겸해 자사의 영화만 밀어주거나 거대배급사의 영화만 밀어주는 식으로 스크린에서 다양성 영화를 밀어내온 것이다. 지난달 31일, 이를 규제할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두 의원에 의해 발의되었다. 유력 대권 후보로 거론된 의원이 포함된 두 중견 국회의원이 개정안을 발의했다는 점에서 영화인들의 기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영화 산업이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분명 존재한다.
우리보다 60년 이상 앞서 영화산업의 수직계열화를 제재하는 미국의 파라마운트 판결이라는 선례가 있다. 시행 초기에는 스튜디오들의 안정적인 상영망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제작편수가 줄고 상영을 포기한 기업에서는 극장을 매각했다. 극장을 사들인 측에서는 수익을 늘리기 위해 티켓 가격을 상승했다. 이로 인해 영화 산업은 크게 위축됐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영화산업 활성화를 위해 노력한 결과 ‘아메리칸 뉴시네마’라는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미국과 같은 전처를 밟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극복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이번 개정안은 영화산업의 고질적인 불공정한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한 첫 걸음일 뿐이다. 법안이 문제점이 있다면 논의가 활발한 이 시점에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 수렴이 필수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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