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립대 통합 찬반투표에서 92%가 반대표를 던졌다. 필자는 본교 학부 졸업생이 아니라서 타 학우의 이해관계를 체감하지 못했으므로, 투표의 의미를 본교 학부 졸업생에게 물었다. 그 친구는 ‘경상·부산지역 취직에서의 학벌 프리미엄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20대의 핵심관심 중 하나; “일반적 의미의 취직”을 주된 초점으로만 학벌 문제를 논하고자 한다(이외에도 같은 스승에게 수학한 유대감, 엘리트주의와 겉치레 문화, 경제력도 학벌과 연관되나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
  먼저, ‘학벌’이라는 어휘가 참 묘하다. 학벌의 벌(阀)은 ‘공훈 벌’ 자다. 벌이 쓰이는 다른 용어로는 재벌, 문벌이 있고 이는 학벌과 함께 ‘명예’를 표상한다. 벌이라는 단어를 ‘사회적 존경의 대상이 되는 신분 또는 지위’라고 해석할 수도 있으나, 취직과 연관시켜서는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속성이 용어로 만들어진 것’이라 해석하는 것이 더 와 닿는다.
  그러면 학벌에서의 공훈의 실체는 무엇일까?조국 대학은 졸업이 쉽고 입학이 어려우므로 ‘입결’이다. ①수능 객관식 혹은 학력고사를 잘 풀었다는 반증, ②교육체제 내에서의 생활을 열심히 하여 수시입학 요건에 잘 어필되게 삶을 꾸며왔다는 반증뿐이다. 사소하다. 사소하다고 표현한 까닭은 인생을 길게 놓고 보면 고교시절은 꼬마시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①, ② 중 하나를 열심히 한 사람의 상대적 성실성은 어느 집단, 조직에서도 바뀌지 않을 확률이 높은 점이 맹점이다.
  나아가 학벌의 공훈을 더 공고히 하는 것이 학교 서열화에 순응한 자신에 대한 보상심리다. 왜곡된 줄 세우기 평가방식 때문에 진정하고 싶은 일 찾기를 포기한 많은 10대가 국어, 영어, 수학 문제풀이에 탈진했고, 두뇌 회전의 정점인 20대에 술 파티와 스스로의 학벌 부심으로 그간의 고통에 보상받는다. 그래서 ‘대학’이 가지는 본연의 의미는 죽었다. 공부가 좋아서 대학 온 사람은 소수다. 입사원서 작성 자격증으로서의 졸업증 따는 곳이 대학인 경우가 많다.
  한편, 현존하는 초고난도 작업 중 하나가 ‘사람 평가’다. 수익 극대화를 위해 기를 쓰는 기업조차 모든 직원이 목표 평가지표는 다 달성했는데 사업수익은 안 나고 손실이 나는 경우가 있다. 내부 구성원 평가도 어려운데 생판 보지도 않은 신입직원평가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지식인이 귀하던 시절에는 대졸자와 대학 간판이 이러한 고통을 줄이는 역할에 일조했다.
  그러나 대학 진학하지 못한 한을 자식에게만큼은 실현시켜주고 싶었던 분들의 염원이, 정치권의 연이은 대학정책 실패 및 대학으로 장사하려는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대졸자는 지난 30년간 폭증했고, 대졸자의 프리미엄은 약해졌다. 그러다 보니 학점, 토익, 대외활동, 기타 다양한 사항도 기업에서는 평가지표로 활용하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상대평가’의 의미로서의 ‘학벌’이 대졸자 간의 평가지표로서, 이전보다 강화된 기업도 일부 있다. 이미 S그룹은 출신학교를 안 보기로 결정했는데도 말이다.
  국립대 통합 반대표를 던진 92% 학우에게 그 표의 의미를 묻고 싶다. 무엇으로부터 무엇을 지키고 싶었는가? 위 문제의식에 공감한다면 지식인으로서 후대를 위하여 조국 대학의 정체성과 이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고민을 끊이지 않았으면 한다.

허신걸(법학전문대학원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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