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시선 평행이론
이러려고 그토록 피를 흘렸나
  • 함규진 서울교육대 윤리교육과 교수
  • 승인 2016.11.14 22:44
  • 호수 1533
  • 댓글 0

 라스푸틴. 요 얼마간 대한민국 국민의 입에서 자주 오르내리게 된 이름이다. 그런데 20세기 초 등장하여 러시아 황실을 몰락의 길로 이끈 이 ‘요승’에 앞서, 약 90년 전에 크뤼데너 남작 부인이라는 사람이 러시아 황제 옆에 있었다.

한때 알렉산드르 1세의 혼을 빼놓았던 그녀는 젊은 시절을 자유분방하게 보낸 끝에 종교에 깊이 빠져, 사이비종교 비슷한 것을 내세우게 된다. 1815년, 나폴레옹과 대치하고 있던 알렉산드르의 막사에 그녀가 나타나 ‘신의 위대하신 사명’을 전하자, 알렉산드르는 눈물을 철철 흘리며 그녀를 ‘예언자’로 받들었다. 그리고 나폴레옹 처리 이후의 국제질서를 논의하던 빈 회의 내내 그녀를 만나고, 그녀의 조언을 듣고, 그녀의 말을 외국 원수들 앞에서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근대 유럽 최초의 다자간 안보체제라고도 하는 ‘신성동맹’도 ‘그리스도를 믿는 백성들은 종파에 상관없이 뭉쳐서 신의 뜻을 섬겨야 한다’는 크뤼데너 부인의 구상을 알렉산드르가 제창한 것이라고 한다.
다행히도 이런저런 사정상 크뤼데너를 대동하지 않고 러시아로 돌아간 알렉산드르 1세는 차차 그녀의 마력에서 벗어나 제정신을 차렸으며, 곧바로 합류할 예정이던 크뤼데너도 늑장을 피우다 보니 5년이나 지나 알렉산드르와 다시 만나게 된다. 그래서 다시 ‘신의 뜻’을 전했으나, 이미 냉정해져 있던 황제는 차갑게 거절했다. 그래도 그녀를 처단하거나 추방하지는 않고, 크림 반도의 땅을 내주어 그곳에서 신앙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도록 배려했다.
20세기 말, 공격적인 대공산권 정책으로 끝내 냉전에서 승리하고 사회주의 몰락을 이끌어냈다는 미국의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의 백악관에도 ‘예언자’의 입김이 있었다. 레이건은 배우 시절부터 부인 낸시에게 깊이 의존했는데, 낸시는 미신을 잘 믿는 성향이었다. 조앤 퀴글리라는 점성술사에게 깊이 빠져 있던 그녀는 백악관 공식 일정을 일일이 퀴글리가 잡아 주는 길일에 맞추게 했다. 외국 국가 원수들과의 정상회담이나 국빈 방문 일정까지 퀴글리에게서 나와 낸시를 거쳐 레이건에게 전해진 대로 정해졌으므로, 영문을 모르는 외국 정상들은 ‘레이건과는 약속 잡기가 도무지 어렵다’며 짜증이 심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역시 라스푸틴의 이름과 함께 많이 들먹여지는 진령군이 있다. 본래 관성제군(관우)을 받드는 평범한 무당이던 그녀는 명성황후가 임오군란을 피해 장호원에 피난 나와 있던 때 ‘머지않아 환궁하시리라’고 예언해 주었으며, 어디가 아프면 어루만져서 고쳐 주니 명성황후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왕후는 환궁한 뒤에도 그녀를 늘 가까이 두고 그녀의 말이면 뭐든지 들으니, 그녀의 집 밖에 뇌물을 들고 온 사람들이 줄을 서고 지방관 치고 그녀를 통하지 않고 임명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최고 권력자의 고독과 고뇌를 틈타, 그 마음을 사로잡아서 ‘이 사람이야말로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다’는 환상을 심고는 최고 권력자를 조종했다는 것이다. 알렉산드르 1세는 본래 신앙심이 별로 없는 냉철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폴레옹에게 쫓겨 모스크바를 불태우고 달아난 뒤로는 마음이 약해져서 신앙에 의존했는데, 그 지긋지긋한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해 또 나타나자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바로 크뤼데너가 나타났던 것이다. 낸시 레이건도 1981년에 남편이 총격을 당해 간신히 살아난 이후로 퀴글리에게 한껏 매달렸다. 궁궐을 버리고 피신하여 숨어 살던 때가 아니었다면 명성황후가 진령군을 만나지도, 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경우도 비슷하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잇달아 총격에 잃고, 이십여 년을 있는 듯 없는 듯 살아야 했던 여인, 그녀가 누군가에게 비정상적으로 의지하는 일은 어쩌면 당연하다. 당연하지 않은 것은 그토록 어렵게, 피를 흘리며 얻은 대통령 직선제로 스스로의 손으로는 머리카락도 못 자르는 라푼젤을 청와대에 앉혔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이러려고 대통령이 되었나’는 말과 함께 ‘이러려고 대통령을 직접 뽑자고 했나’는 말을 곱씹어야 한다. 그래서 더 나은 제도와 문화와 시민의식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함규진
서울교육대 윤리교육과 교수

 

함규진 서울교육대 윤리교육과 교수  press@pusan.ac.kr

<저작권자 © 부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함규진 서울교육대 윤리교육과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