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서 잠이 안 와, 한참을 뒤척였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전날이었다. ‘최순실’이 나라를 관통하는 유머코드가 된지 어느덧 2주째다. 그간 드러난 최순실의 잘못은 비대했고, 비판과 질타는 그에 비례했다. 쏟아지는 풍자에 끊임없이 웃어댔지만 순간뿐이었다. 대통령은 뜻 모를 사과문만을 발표한 후 침묵을 유지했다. 그렇기에 담화가 설렐 수밖에 없었다. 허나 긁어 부스럼. 의미 없는 어휘만이 회견장을 가득 채웠다. 열 번에 거쳐 반복된 ‘국민’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국민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담화였다. 이럴 거면 그러지 말지.
  5%. 천지창조 이후 최저의 지지율, 동정론 따위가 먹힐 상황이 아니다. 허나 대통령은 한 줌의 지푸라기라도 잡으려했다.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라던가 ‘국민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해드리겠다는 각오로 노력’했다는 전제 하에, ‘순수한 마음’과 ‘인연’을 들먹이며 가슴의 통증을 호소했다. ‘모든 책임을 질 각오’ 역시 비장하게 내세웠으나, 국정농단을 ‘특정 개인’의 영역으로 퇴색시키며 스스로 지푸라기를 놓아버렸다. 광화문에 대통령의 아픈 과거를 새기려는 5푼 지지자들의 지원사격은 역효과였다.
  물론 최순실의 부재로 인해 청와대 비서진의 필력은 돋보였다. 국어의 파격과 우주의 기운은 더 이상 감돌지 않았다. 다만 유체이탈화법으로 일컫는 특유의 타자화를 지우지 못했다는 점이 옥의 티다. 한층 강화됐다고 평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스스로 경계의 담장을 낮’추고 ‘엄격하지 못’했다고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다가도, 느닷없이 ‘특정 개인’의 비리로 집약됐다. ‘저의 잘못이고 저의 불찰로 일어난 일’이지만 ‘진상규명과 책임추궁은 검찰에 맡’겨야 한단다.
  산재한 모순은, 아이러니하게도 부재중인 ‘최순실’을 욱여넣으면 모두 해결된다.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염려하여 가족 간의 교류마저 끊’었지만 최순실은 가족이 아니다. (최순실로 인한) ‘국정혼란과 (최순실의 구속으로 인한) 공백 상태를 막기 위해 정부는 (최순실을 위해) 본연의 기능을 하루속히 회복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 (최순실의) 안보가 매우 큰 위기에 직면해 있고 우리 (최순실의) 경제도 어려운 상황’이니까.
  ‘어떤 문제에 대한 견해나 태도를 밝히는 말’이라는 담화의 정의를 되새겨보면, 사실 매우 뚜렷한 대국민담화였다. 절연선언은 겁박에 가까웠고, 책임총리제에 대한 언급은 ‘0’이었다. 물론 질의응답은 여전히 없었다. 소통을 외친 담화 직후, 경찰은 대통령 퇴진 도심행진을 금지했다. 민주주의가 결여된 대통령의 사고는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냐는 유행어로 여지없이 드러났다. 대통령의 의중이 십분 반영된 이번 담화,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은 크게 실망했다.
  참으로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다. 글을 내리쓰고 보니, 단순 비아냥에 그치고 말았다. 진솔한 심경을 표현하며 독자를 펑펑 울리고 싶었는데, 대통령의 감성에 휘둘려 논리적 반박을 포기해버렸다. 모두 필자의 잘못이고, 필자의 불찰로 일어난 일이다. 무엇보다도 필자를 믿고 끝까지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돌이키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드려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내가 이러려고 글을 썼나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하다. 스스로를 용서하기 어렵고 서글픈 마음까지 들어 밤잠을 이루기 힘들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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