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천 명에 가까운 철도 노동자들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역사 바깥으로 나왔다. 역대 최장기록으로 파업을 이어오고 있는 이들. 시민들의 등쌀과 언론의 핍박에도 이렇게 파업을 이어오고 있는 이유는 바로 성과연봉제에 반대하기 위함이다. 이토록 논란의 중심에 선 성과연봉제가 어떤 이유로 도입된 것인지,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분석해 본다.

 

 

   
 

성과에 따라 보수 받는
성과연봉제

  성과연봉제란 업무 성과에 따라 차등적으로 보수를 지급하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 때부터 공공기관에 성과연봉제를 적용해왔다. 성과연봉제가 떠오른 것은 근무한 연차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의 대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년 연장에 따른 인건비가 가중되는 현행 임금체계를 보완하기 위함이다.
  지난 1월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권고안’을 확정했다. 이전에 있었던 성과연봉제의 확대판이다. 권고안에 따르면, 기존 간부직 2급 이상, 전 직원의 7%를 대상으로 하던 성과연봉제를 비간부직 4급 이상, 적 직원의 70%까지 확대 적용한다. 성과연봉제가 시행되면 노동자 개인의 임금은 △기본연봉 △성과연봉 △기타수당으로 단순화된다. 그리고 이 중 기본연봉 인상도 차등적으로 시행해 최고 4%까지(기본연봉을 4천만 원으로 가정했을 때) 격차를 내도록 한다. 이러한 성과연봉제의 기본 원칙은 ‘누적식’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러한 성과연봉제를 각별히 챙겨왔다. 공공기관 운영위원회를 직접 주재하며 도입 실적을 챙기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직접 공기업은 6월까지, 준정부기관은 올해 말까지로 도입시한을 정해주기도 했다. 그 결과, 기획재정부는 지난 6월까지 120개 공공기관 중 114개(95%)의 공공기관이 확대된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양대지침은 저성과자
퇴출 가이드?

  성과연봉제가 저성과자들을 퇴출시킬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성과연봉제 권고안이 발표된 이후, 곧바로 고용노동부는 양대지침이라 불리는 ‘공정인사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을 내렸다. 공정인사 지침은 한마디로 일반해고의 방법과 절차를 열거해 놓은 것이다. 이는 △성과 중심의 인력운영 △근로계약 해지 등 두 갈래로 나뉜다. 특히 근로계약 해지에 대한 부분에서는 ‘현저히 업무능력이 부족한 경우, 별도의 징계 사유가 없더라도 통상해고 사유가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에 철도노동조합 김정한 정책실장은 “성과연봉제 발표 이후 곧바로 해고 규정을 발표했다는 것은 성과연봉제를 통해 해고자를 생산하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반발했다.
  공정인사 지침과 함께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이하 취업규칙 지침)도 내려졌다. 취업규칙 지침에는 노조의 동의 없이 노동자에게 불이익하게 취업규칙을 변경하더라도,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면 변경의 효력이 있다는 대법원의 판례가 명시돼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또 다른 판례를 통해 이러한 법리를 적용할 때는 △노동자들이 입게 될 불이익의 정도 △변경의 필요성의 내용과 정도 등을 고려해 제한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같은 지침이 악용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기도 했다. 지난 8월 보도자료를 통해 ‘저성과자 해고 및 근로자 동의 없는 취업규칙 변경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고 근로기준법의 근로자 보호 취지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밝힌 것이다.

 

공공기관의 특수성
무너질 수도

  공공기관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할 경우 공적서비스 제공의 기반이 무너질 위험성도 있다. 성과연봉제에 따라 직원들의 실적경쟁이 벌어지면 고스란히 피해는 국민에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공기업 중 하나인 국민연금공단은 2004년에도 이와 비슷한 성과 경쟁 제도가 도입됐다. 당시 직원들과 지점장들은 무리하게 보험료를 부과하는 등 더 높은 성과를 달성하려 애썼다. 그 결과 이른바 ‘국민연금 안티사태’인, 국민들의 대대적인 국민연금 탈퇴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국민연금지부 윤동석 서울남부지회장은 “성과연봉제가 공적연금제도 부문 직원들로 하여금 성과를 두고 앞 다투게 한다”며 “실적 경쟁보다는 소외계층을 발굴하고 내실화를 우선해야 할 시점”이라고 전했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성과연봉제가 일반 창구 직원에게까지 확대되면 직원들은 상품성이 높은 계좌나 카드를 판매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러한 계좌나 카드는 소비자들의 신용도를 하락시킬 위험도 크다는 것이다. 금융공공기관 노동조합 기업은행 지부 정 씨는 “성과연봉제는 결국 국가가 공기업 직원과 국민에 대한 책임을 져버리는 행위”라며 “이자율의 상승이나 대출 요건 완화 등의 부작용이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 말했다.
  성과연봉제의 도입은 공공 서비스의 안전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철도 부문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할 경우 직원간의 협동 업무를 약화시킨다는 이유에서였다. 철도 노동자들은 이미 일본에서 성과에 따른 보수 지급에 대한 부작용이 나타났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정한 정책실장은 “11년 전 일본에서도 성과 경쟁으로 인한 탈선사고가 일어났었다”며 “과도한 성과주의는 사회적 책임보다 효율만을 우선해 안전에도 위협을 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모두가 합의하는
객관적 지표란

  업무 형태의 특수성으로 모든 직업군을 포괄하는 객관적인 성과 지표를 만들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실제로 노동자들이 성과연봉제를 반대하는 주요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성과연봉제가 성공적으로 운용되기 위해서는 직무분석과 직무평가 기법의 개발 등이 선행되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지부 윤동석 서울남부지회장은 “노동자들이 평가에 대해 이의제기를 하거나 피드백을 할 수 있는 체계도 구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작년부터 시행된 국립대학에서의 성과연봉제도 그 일례다. 교수들의 성과를 계량화하려면 ‘논문 편수’를 지표로 삼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립대학 교수들은 학문별 논문 생산 가능성이 다르다는 것을 이유로 대대적인 반발을 일으켰다. 권혁(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성과 지표는 내부 구성원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하는데, 논문 편수는 그렇지 않다”며 “무엇이 성과인지는 대학구성원에게 맡겨야 하는 것”이라 말했다.

 

각계각층에서
우려하고 반대하는 제도

  성과연봉제의 여러 부작용을 우려하며 일부 의원들은 성과연봉제 강제 도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지난달 31일 무소속 김종훈 의원 외 12명의 의원들은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할 계획을 밝혔다. 이에 따르면 제94조에 2항을 신설해 근로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한 취업규칙은 그 효력이 부인되도록 명시했다. 김종훈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근로기준법>의 개정 목적은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한 취업규칙의 효력을 부인되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국내 유명 법률회사들 또한 성과연봉제 도입이 위법일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가 ‘김앤장’ 등 대형 로펌에 문의한 결과, 성과연봉제의 도입이 법규에 위반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받았다. 김종훈 의원이 공개한 ‘김앤장’의 답변서에는 ‘성과연봉제로 인해 임금에 있어서 노동자의 불이익이 발생하므로 이를 노동자의 동의 없이 변경한 것은 위법일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서두르다 근로기준법
위반한 정부

  성과연봉제 도입을 서두르다 현행법을 위반하는 일이 벌어졌다.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노동자와 사측의 단체협약을 갱신하거나, 취업규칙을 바꾸는 것이다. 단체협약은 노동자들이 반대하므로 불가능하므로, 사측은 취업규칙을 변경해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아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사례가 발견되고 있다. 한국철도공사(이하 KORAIL)와 국민연금공단 등의 공기업들이 이사회의 의결만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해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것이다. <근로기준법> 제94조에 따르면 취업규칙을 변경할 때에는 노동조합이나 근로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사업주 처벌까지 가능하다.
  KORAIL 측은 이 같은 규칙변경은 예외에 해당하므로 위법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근로기준법> 제94조에는 단서조항이 붙어있다. ‘다만,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그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지난달 25일 KORAIL은 호소문을 통해 ‘성과연봉제는 개별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없도록 저성과자 퇴출과는 무관하게 설계돼 있다’며 ‘<근로기준법> 제94조에 의거해 적법하다’고 밝혔다. 이에 김정한 정책실장은 “일방적으로 제도를 도입한 사측이 저성과자 퇴출과 연계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것은 신뢰가 가지 않는 발언”이라며 비판했다.
  한편 공공기관 노동조합은 사측의 일방적인 성과연봉제의 도입을 저지하기 위해 법적 공방을 벌일 계획이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공공부문노동조합은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들은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성과연봉제가 무효’임을 주장하며 사측을 상대로 소송을 내걸고, 소송이 끝나기 전까지는 시행을 유보하는 효력정지가처분도 함께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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