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테리다. 무능하디 무능한 국회가 ‘김영란법’을 통과시킨 거다. 최순실 사태만큼이나 소설 같은 일이 벌어진 셈이다. 사적 인연을 매개로 한 부정청탁만큼 우리 사회를 어지럽힌 것도 없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은 김영란법 이전과 이후로 나뉠 만하다는 얘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반동의 기운도 느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선봉에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가 서 있다. 권익위의 경직된   해석이 논란거리다. 단지 혼란을 자초해서가 아니다. 김영란법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어서다.
얼마 전 신문 기사에 소개된 사건이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수원지검 A 수사관 책상 위에 누군가 4,000원에 상당하는 커피 2잔을 놓고 갔다. 알고 보니 A 수사관이 맡은 사건의 피해자 B 씨가 놓고 간 것이었다. A 수사관은 김영란법을 설명한 후 정중히 거절 의사를 밝혔다. B 씨는 도로 가져갈 생각이 없으니 알아서 처리해달라고 했다’ 피식 웃고 말았다. 커피 2잔을 두고 갔다고 전화해서 김영란법 얘기를 했다는 게 영 싱거워 보였다. 도로 가져갈 생각이 없다는 것도 너무 당연한 일 아닌가. 커피 두잔 가지러 뒤늦게 검찰로 다시 돌아갈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A 수사관은 수원지검 자체 청탁방지 담당관에게 보고했고, 커피는 폐기처리 됐다. 검찰 청탁금지법 태스크포스팀(7명)은 이 문제로 회의를 열고 B 씨 처리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직무관련성이 있는 금품으로 볼 것이냐, 감사함을 표시한 사회상규로 볼 것이냐 등을 판단할 예정이다” 이 대목에서 시쳇말로 ‘빵’터졌다. 검찰 태스크포스팀 구성원 7명이 도대체 본래 뭘 하는 사람들인지는 모르겠다. 혹여 그런 일로 회의 할 시간이 있다면, 부디 수많은 민생사건들부터 챙기는 게 옳지 않을까.
  한 번쯤 경찰서나 검찰에 가 본 사람은 안다. 보통 사람은 그 근처에만 가도 위축되기 마련이다. 수사를 받은 사람에게 수사관은 더 이상 ‘수사관’이 아니다. ‘하나님’이다. 병원 환자도 마찬가지 아닌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이라도 하게 되면 주치의가 하나님처럼 느껴진다. 그런 ‘하나님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들으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이러할진대 수사관에게 커피 두잔 두고 간 일이 그리도 비난받을 일인가. 청탁인지 아닌지 따질 것도 없다. 이참에 그 수사관에게 물어보고 싶다. “4,000원짜리 커피 대접받으니 마음이 흔들리던가요?”
따지고 보면 커피 한잔 들이미는 이유는 단순하다. 상대방이 ‘잘 먹겠다. 고맙다’ 하면서 웃어 주길 바랄 뿐이다. 오로지 그 말이 듣고 싶을 뿐이다.
  진짜 부정청탁인지는 회의를 열어야만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미 당사자가 스스로 잘 알 수 있다 ‘상식’이라는 오묘한 기준이 있어서다. 도대체 상식이 통하지 않아서 일일이 물어봐야 하는 법이라면 더 이상 법이 아니다. 교수와 학생 사이에서는 ‘캔커피’하나라도 주고받을 수 없다는 권익위가 김영란법을 그렇게 만들고 있다.
  기왕 나온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만 더 하자. 지금 김영란 전 대법관은 서강대학교 석좌교수다. 변호사로서 대형로펌에 가셨더라면 떼돈을 벌었을 터다. 그걸 마다하고 학교로 오셨다니 존경스럽기 짝이 없다. 그만큼 청빈하고 올곧은 분임이 틀림없다. 그 정도 예우는 약과다 싶다. 그래도 찜찜은 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학생들이 내미는 캔커피보다는 대학이 내미는 ‘석좌교수직’이 더 청탁에 가까워 보여서다. 김영란 ‘석좌교수님’은 그냥 변호사를 하시면서 돈 버시는 게 맞지 싶다. 아이러니다. 이참에 대학이 남발하고 있는 ‘명예박사’와 ‘교수’ 타이틀도 정리되어야 마땅하다.
  당초 이 기고문을 쓰지 않겠다고 했었다. 항의하고 싶어서였다. 그 어디에도 대학교수 더러 신문 기고하는 것을 사전에 신고하라는 나라는 없다. 주제까지 미리 적어 내라니 기가 막힌다. 김영란 교수님이 대한민국을 ‘감시사회’로 만들고 싶어 하셨을 리 없다. 기적처럼 통과된 김영란법 아닌가. 어줍잖게 ‘감 놔라, 배 놔라’하는 순간 김영란법은 책장 어느 한켠에 처박히고 만다.

권혁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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