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는 이름처럼 ‘스트레인지’한 것이 아니라 익숙한 느낌을 준다. 에셔의 작품을 보듯 화려한 특수효과는 <인셉션>, 빈약하지만 의식의 문제는 <매트릭스>에서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닥터 스트레인지는 마블의 다른 히어로들과 달리 마법을 사용한다. 이 영화를 두고 과학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난센스일 만큼 닥터 스트레인지가 사용하는 마법은 강력하다. 문제는 현실에서도 마법은 과학 못지않은 위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소위 잘 나가는 외과의사인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 분)는 사고로 인해 그동안 자신이 철저히 믿었던 현대 의학이 한계를 드러내자 깊이 절망한다. 실의에 빠진 그에게 희망을 준 것은 사이비 과학으로 취급받는 대체의학이다. 수련하는 동안 자신의 능력을 알게 된 닥터 스트레인지는 병을 고치는 의사가 아니라 지구를 지키는 수호자로 거듭난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과학의 영향력이 커진 것은 최근의 일이며, 대부분은 마법이나 미신이 인간의 삶을 지배했다. 고대에는 마법과 과학이 뒤섞여 있었고, 심지어 종교도 그것들과 구분되지 않았다. 그러한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기적이었고, 모든 기적은 곧 현실이었다. 신의 노여움으로 인해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꽂히는데 인간이 늑대로 변한다는 이야기를 믿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원자에 대한 개념이 아직 관념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시절에 물질이 다른 물질로 변한다는 것도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많은 연금술사가 일확천금의 꿈을 꾸며 연금술에 기꺼이 자신의 일생을 걸었다. 마법사들은 그들만의 비전(祕傳)을 통해 만든 소위 ‘마법의 약’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마법을 구사했다. 중국에서는 도교의 도사들이 불로불사의 약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이 목적한 바를 이루지는 못했고, 대부분 패가망신하거나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금을 만들거나 불로불사의 약을 만드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부 약물이 질병에 효험을 보이기도 했으며, 그로 인해 약학이라는 학문의 탄생에 기여한 바도 있다. 또한 화약과 같은 새로운 물질을 얻었으며, 다양한 실험도구를 만들기도 했다. 그들의 활동을 얼핏 보면 화학자들의 실험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그들의 행위가 아무리 화학실험과 비슷하게 보여도 그건 화학 즉 과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부 역사가들은 연금술이 과학혁명을 이끌어냈다고 하지만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천체를 관측한다고 해서 점성술을 천문학의 기원으로 볼 수는 없듯이 연금술은 화학의 기원이 아니다. 마법과 과학이 혼재되어 있다가 마법을 부정하고 합리성을 추구하며 갈라져 나온 과학은 분명 마법과 다르다.
  첨단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마법이나 미신 따위를 믿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는 말은‘포스가 함께 하길’이라는 말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문제는 이러한 태도가 한 사람만의 독선적 생각이 아니라는 것이다. 작고한 미국의 과학자 칼 세이건은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과학, 어둠 속의 작은 촛불>에서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마법과 미신이 판치고 있다고 경고했다. 마법과 미신이 사이비 과학의 모습으로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것이다. 세이건은 어디에도 악령이 나타났다는 증거가 없음에도 악령이 출몰한다고 믿는 어두운 세상 속에서 작은 촛불이 될 수 있는 것이 과학이라고 믿었다. 그는 과학대중화를 위해 퓰리처상에 빛나는 <에덴의 용>을 비롯해 <코스모스> 등 많은 명저를 남겼다. 오늘따라 어둠 속에서 촛불을 밝히려고 노력했던 한 과학자의 삶이 더욱 값지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최원석
과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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