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이 붐이라 한다. ‘CEO 인문학’에서 ‘노숙자 인문학’까지 대중들의 취향과 용도에 맞춤한 다종다기하고 실용적인 인문학 강좌들이 허다하고, 인문학 서적들이 베스트셀러 상위에 랭크되는가 하면, 기업이 인문학의 부활을 주장하고, 국가는 법으로 인문학 진흥을 도모한다. ‘문화융성’이라는 슬로건 아래 지역의 문화축제와 연계한 정부 주도의 인문강좌가 기획되는가 하면, 국가가 인준하는 ‘인문도시’가 탄생하고, ‘인문학 마을 만들기’가 지자체의 주력사업이 되는, 바야흐로 인문학의 부흥시대다.

장외 인문학의 이 비상한 열기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정작 장 안의 인문학은 죽어가고 있다. 기업의 수요에 맞게 정원을 감축하는 대학에 편파적으로 재정을 지원한다는 교육부의 명령이 대학을 길들이면서 대학이 취업양성기관으로 변태한지 오래고, 취업률지상주의가 평정한 대학에서 인문대는 대학평가 하락의 주범이며, 고객(학생)을 잠재적 실업자로 만드는 대학/국가의 주적이고, 영락없이 구조조정의 영순위가 되었다. 국가가 돈으로 대학을 통제하면서 돈 안 되는 인문학과들의 폐과가 속출하고 돈 되는 인문학으로 거듭나기 위한 이합과 집산이 비일비재 일어나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에서 불문과, 독문과가 퇴출된 지는 이미 오래고, 철학과의 온전한 생존이란 희귀한 현실이 되었으며, 국문학과는 한류확산을 위한 문화콘텐츠학과로 부단히 변신 중이다. 대학의 인문학만 위기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학 밖에서 대안 인문학을 모색하는 다양한 인문학 공동체들도 상황은 나날이 열악해지고 있다. 이른바 인문학 열풍을 타고 정부와 지자체, 대학, 기업, 공공 도서관, 문화원 등이 주도하는 무료의 혹은 값싼 인문학 강좌들의 물량 공세가 범람하면서 참가자가 최소한의 경비라도 지불해야 하는 인문학 공동체들의 강좌는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지금, 여기를 달구고 있는 장외 인문학의 유행이나 국가 주도 대학 인문학 진흥사업이란 그 경이로운 소문과 그럴싸한 명분에도 불구하고 외려 인문학의 죽음을 은폐하거나 방기하고 있다. 국가와 자본에 의해 동원/독려되는 인문학이란 과거 교육부 장관이 명쾌히 정의한 바 있듯이 ‘취업에 필요한 소양으로서의 인문학’, ‘자기계발을 위한 인문학’으로 특화된 것이며, 교환가능한 지식이 되기를 거부하는 인문학, 성과로 환원되지 않고 자본으로 축적되기를 거절하는 인문학은 국가와 학교 경쟁력을 좀먹는 시대착오적 인문학으로 낙인 찍혀 가차 없이 퇴출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인문학의 부활이 동시에 인문학의 죽음이 되는 이율배반이 웃픈 현실이 되고, 불편하지도 불온하지도 않은 인문학만이 시대의 적자로 안전하게 번성 중인 상황이다. 하니 지금, 이곳의 인문학 융성이란 인문학이 소생하는 반가운 기미가 아니라 되레 인문학의 종언을 예고하는 불길한 징후인 셈이다.

사교와 교양을 위한 인문학, 자본에 봉사하는 인문학, 권력이 두려워하지 않는 되레 권력을 두려워하는 인문학, 인문학의 이 위험한 변질을 획책하는 시대의 불순한 힘들을 절단할 당사자 역시 인문학이다. 시대에 편승하려는 나태와 비겁을 도려내고 세상을 벼리는 칼 같은 인문학의 실존을 증명해야 하는 책임, 그것이 지금, 이곳의 인문학이 수행해야 할 온당한 몫이다. 무도한 시대와 불화하려는 우리 시대 인문학의 정당한 항의와 견결한 분투를 온 마음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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