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KBS는 스스로를 이렇게 설명한다. 공영방송의 자부심이 흘러넘치는 표현이다. 핵심은 역시 ‘국민의 방송’이다. 1990년대 이후 KBS 로고송의 멜로디와 가사는 수차례 바뀌었지만, 국민의 방송이라는 단어는 항상 빠지지 않고 들어갔다. KBS는 국가의 방송도, 기업의 방송도 아니다. 공영방송, 그들의 말마따나 ‘여러분의 소중한 수신료로 제작’된 방송이다.
  문제는 그 국민이 대체 누구냐는 것이다. 지난 11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는 KBS에 대한 국정감사를 실시했다. KBS 고대영 사장이 증인으로 나왔다. 그는 일명 ‘이정현 녹취록’ 사건에 대해 ‘KBS는 국민의 방송이며 누구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고 답했다. 물론 대통령과 청와대 홍보수석도 국민이다. 그의 논리가 위험한 이유는 사실과 판단을 교묘하게 교차해놓았기 때문이다. 그 논리를 따라가면 KBS 보도국장에게 하필 오늘 대통령이 KBS를 봤다며 한 번만 도와달라고 요구하는 게 정당한 의견제시가 된다. 그렇기에 청와대가 언론을 통제한다는 비판은 성립할 수 없다. KBS를 통제하는 것은 국민이다.
  이렇듯 대통령은 국민으로 인정받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이후 국민과 비국민을 가려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국정교과서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에 반대하면 비국민이다.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석하면 비국민이다. 비국민의 죽음에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자도 비국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9월 안보상황점검회의에서 ‘국내 불순세력이나 사회불안 조성자에 대한 철저한 감시를 통해 국민안전을 책임질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정부의 ‘국민감별망’을 통과하지 못한 이는 모두 불순세력이고 사회불안 조성자인 셈이다. 비국민의 배제를 통한 국민의 결집으로 이어지는 ‘국민감별론’이다
  KBS는 이 국민감별론 위에서 스스로의 존재이유를 찾았다. 국민은 바르고 선량한 가치관을 지닌 진실한 사람의 동의어다. KBS는 이들을 대변해야 한다. 국민의 방송이기 때문이다. 불순한 비국민들은 곧 공격의 대상이 된다. 그들은 일하기 싫으면 파업하고 떼를 쓰기 위해 거리로 나온다. 물류대란과 교통정체를 유발해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들만 없었어도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었을 것이다. 그걸로 모자라 때때로는 폭력도 서슴치 않는다. 사회의 암적인 존재들이다. 그래서 KBS는 오늘도 국민을 위협하는 불순세력을 상대로 성스러운 전쟁을 치른다.
  성전은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 KBS만의 공은 아니지만 KBS의 공이 있음은 분명하다. 국민과 비국민 사이에는 선명한 선이 그어졌다. 성주 주민들은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을 시작하고서야 세월호 유가족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한다. 애초에 국민은 비국민을 이해할 수 없는 구조다. 이해하는 순간 그 자신도 비국민으로 배제된다. 정부가 만든 이 틀은 언론의 힘을 빌어 실현됐다. 효과는 매우 가시적이다. 편 가르기와 배제의 일상화는 토론과 합의의 실종으로 연결됐다. 사회의 파편화에는 점점 속도가 붙고 있다. 국민과 비국민이라는 틀 위에 세워진 국민의 방송이라는 구호는, 그래서 악랄하다.

김민관 대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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