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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종호 판사가 법정에서 호통치는 진짜 이유
  • 신지인 편집국장
  • 승인 2016.10.17 03:24
  • 호수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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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돼. 안 바꿔줘. 빨리 돌아가”. 부산가정법원 천종호(법학 85, 졸업) 판사가 법정에서 학교 폭력 가해자에게 한 말이다. 그 모습이 인터넷 상 유명세를 타면서 그는 단호함의 대명사가 됐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 그는, 청소년들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무서운 호통도 법정에서 마주치는 가해자 청소년들이 다시는 법정에 설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 같은 배경에는 그의 불우한 유년시절이 있었다.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며 공부에 매진하던 시절, 그는 ‘멘토 역할을 해줄 사람이 있었으면’하고 간절히 바랐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법정에서 청소년들에게 판사 역할을 넘어 멘토 역할까지 자청한다. 소년전담재판관으로서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기 위해 지난 7월, <부대신문>은 천종호 판사가 있는 부산가정법원 1203호실 문을 두드렸다.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이르게 됐나.
  대학 시절에는 오로지 사법고시에 매진했다. 집과 학교 사이만 왔다 갔다 하며 공부했는데, 고된 생활 때문에 6개월 동안 매일 코피를 흘리기도 했다. 그렇게 공부를 하는 동안 학교에서는 많은 일이 있었다. 1987년도에는 전두환 대통령의 독재정권을 규탄하는 시위가 학내·외로 불거지고 있을 때였다. 당시 나는 3학년이었는데, 다른 학생들은 강의실을 다 막아버리는 등 시위에 적극적이었다. 나는 직접 시위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방법으로 정의를 구현해 보고 싶었다. 그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법조인이 되는 것이었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것은 1994년에 들어서 였다. 부산지방법원에서 판사로 임명돼 그곳에서 재직하다가, 2010년부터는 창원지방법원 소년부에 부임했다. 3년 뒤 부산지방법원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에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소년재판을 담당하게 됐다.

△소년범죄를 전담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어린 시절의 내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달동네라고 불리는 부산광역시 서구 아미동의 까치고개였다. 좁은 단칸방에서 아홉 식구가 생활하면서 찢어질 듯한 가난에 시달렸다. 법정에서 만나는 비행청소년들 대부분은 나와 같이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었다. 이들을 조금만 계도하면 올바른 방향으로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난함을 탈피하고 그 동네를 벗어나기 위해 오로지 공부에만 매진하는 와중에, 누군가 나를 이끌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당시의 나와 비슷한 환경에 처한 아이들을 그저 판사와 가해자 사이가 아닌, 멘토와 멘티 사이로 대하고 있다.

△소년범죄 재판은 어떻게 이뤄지나?
  소년범죄 재판은 일반 재판과는 다르다. 일반 재판은 작게는 벌금에서부터 크게는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다. 그러나 소년 재판은 소년의 범죄사실뿐 아니라 평소 소년의 성행이나 가정환경, 보호자의 보호 의지나 능력도 함께 고려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구형에 있어서도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러한 과정이 포함된 재판이 소년보호재판이고, 이를 담당하는 것이 내 몫이다. 청소년들에게만 소년보호재판을 진행하는 이유는 처벌보다는 치유가 우선돼야 하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저지르는 학교 안팎의 범죄에서, 그들은 가해자이자 피해자이기도 하다.

△‘호통 판사’로 잘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재판 중 호통을 치는 경우가 잦나?
  아니다. 오히려 극히 드물다. 강도나 사기 정도의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불호령을 내리는 것은 낭떠러지에서 밀어버리는 것과도 같다.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이들에게 반성할 기회를 주는 것은 보호감찰제도밖에 없다. 청소년 범법자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확실한 제도가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럼에도 호통을 칠 때는 가해자가 엄벌을 가해야할 만큼 극심한 폭력을 가했을 때에 해당한다. 재판이 끝났다고 해서 범죄에 대한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아이들의 인생에서 다시는 법정에 설 일이 없도록 따끔하게 혼낸다. 이처럼 호통을 치는 것은 이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함이고, 사실 호통을 치고 싶은 대상은 따로 있다.

△그 대상이 누구인가?
  청소년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면서, 비행청소년이라는 낙인부터 찍는 사람들이다. 일반적으로 비행청소년에 대한 근본적 대책 마련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청소년 범죄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너무도 빠르게 찍어버린다. 평소 지인들에게서 자주 듣는 얘기가 있다. ‘가난하거나 결손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아이들이 모두 탈선하는 것은 아니지 않냐’다. 하지만 이것은 틀린 얘기다. 어른의 역할은 가정환경이 나빠도 청소년들이 올바르게 자라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가정환경이 지금보다 나아지도록 개선시켜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년보호재판 외에도 그들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일이 있다고 들었다.
  비행청소년의 대부분은 결손가정이거나 저소득층인 경우가 많다. 주로 가정에 원인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청소년이 받는 구형은 중형 이하이므로, 대다수가 재판 이후 집으로 돌려 보내지게 된다.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지 않아 여전히 비행을 다시 벌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실제로 한번 법정에서 봤던 아이를 몇 번이고 다시 봤던 적도 있다. 청소년들이 처한 환경을 근본적으로 조정하기 위해 국가와 사회가 나서 보호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추진한 것이 사법부가 주도하는 ‘청소년 회복센터(사법형 그룹홈)’다. 그룹홈은 가정이 해체될 경우 청소년을 임시로 보호하는 곳이다. 그러나 기존 그룹홈에서는 비행청소년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법부가 직접 비행청소년들을 24시간 돌봐주는 청소년 회복센터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작년 10월에는 이를 국비로 지원받을 수 있도록 <청소년복지지원법>을 일부 개정한 법안을 건의해 통과시켰다. 그 결과 현재 전국에 청소년 회복센터 17개소에서 140명의 청소년들이 보호받고 있다.

   
2013년 1월 SBS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학교의 눈물>에서의 천종호 판사. 그는 단호한 말투로 인터넷 상에서 유명세를 탔다

△지금까지 법관으로서 활동해 오면서 꼭 지키고자 했던 가치관이 있나?
  법관처럼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해 깊이 관여할 수 있는 직업도 없다. 피고에게 벌금형부터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판단의 책임이 막중하다. 또한 한 사건에 대해 홀로 결정하고 판단해야 하므로 고독하기도 하다. 법조인의 직업 특성상 세상과 완전히 떠날 수도,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 있을 수도 없기 때문에 그 적정선을 잘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법조인으로서 여러 장르의 책과 영화를 많이 접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작품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법조인은 법정에서 만나는 가해자들과는 달리 순탄한 인생을 살아온 경우가 많아 심정적으로 그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가해자들의 인생을 이해하는 것과 재판은 별개이지만, 그렇다고 따로 떨어뜨려 놓을 수도 없다. 적절히 가해자들의 인생을 공감하면서 올바른 판단을 하려면 많이 경험해 보는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법관으로서 분쟁해결의 도우미 역할만을 했다. 한마디로 공익의 대변자로서 활동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드는 생각은 분쟁 조정이 끝나도 청소년 가해자들이 다시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삶의 안내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70주년을 맞은 학교와 후배들에게 한마디 건네 달라.
  우리 학교가 지역적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특별시를 기준으로 했을 때 부산광역시는 일종의 변방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역사적 변혁은 언제나 중심이 아닌 변방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내구성원들이 현재 자신이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심을 무조건 쫓아가려 하지 말고, 나름의 특색을 살렸으면 좋겠다. 

 

신지인 편집국장  amigo@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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