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마음의 상태를 다루는 것으로써 그림은 마음의 표현이다. 이중섭(李仲燮, 1916~1956)의 그림에는 정신적, 심리적 요소인 인간의 희로애락이 담겨있다.
  이중섭 타계 이후 10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많은 미술사가가 그의 작품을 평가하는 관점은 다양하다. 필자는 미술치료사, 미술사학자로서 인간의 심리와 표현양식에 관한 연구에 관심을 가지며 이중섭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그의 일생과 작품이 신화로 알려져 왜곡과 과장이 있지만 그건 아마도 헤라클레스처럼 삶의 모진 역경을 이겨낸 탓이라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의 소재들은 매우 독특하다.
  예술의 기능은 삶의 대용물로서 자신이 실제로 얻고 싶으나 투쟁할 용기가 없어 주저하는 욕망의 대리 역할이며, 예술가에게 감성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재료이다. 감성은 시대적인 것에 기초하는 것이고, 개인적으로 많은 경험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예술가에게 있어 삶의 경험과 환경은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겠다.

이중섭의 작품과 내면세계는 심리학적으로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그림의 시작은 경험을 보존하는 방식으로서 출발하였다. 경험은 내적이든 외적이든 화가의 기억 속에서 이미지화되어있다. 이미지에 관하여 분석심리학자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은 ‘우리가 알지 못하거나 늘 잊고 있는 것 같으나 의식하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의 이미지이며, 이미지는 정신이다’라고 말하였다. 이를 비추어본다면 객관적인 시각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형태와 색상은 기질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게 파악되고, 본성과 기질, 경험은 개인의 표현양식과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예로써 루드비히 리히터 (Adrian Ludwig Richter , 1803~1884: 독일의 낭만주의 계열화가)는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젊은 시절 세 명의 친구와 함께 티볼리에서 동일한 풍경 한 장면을 그려보기로 하였음을 술회한 바 있다. 그들은 그때 있는 그대로의 자연상태에서 털끝만큼도 왜곡시키지 말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대상이 동일하고 각자의 상당한 솜씨를 발휘해 그 대상에 충실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눈앞에 드러난 것은 넉 장의 판이한 그림들이었다. 그것들은 네 사람의 성격만큼이나 서로 각각이었다. 이처럼 예술의 표현은 개인의 기질과 경험에 근거한 것으로써 서로 다른 표현의 양식성을 나타낸다.
  이중섭에게 삶의 경험은 예술의 바탕이 되었다. 누구나 그렇듯 개인의 인격형성은 가정환경, 시대정신, 사회문화적 여건에 영향을 받는다. 이중섭은 예술로 자신 속에서 치열하게 갈등을 일으키는 의문들을 표출하였다. △자식의 죽음 △가족과 이별 △전시로 인한 좌절 등의 트라우마는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표현되었다.
  많은 사람이 황소를 이중섭의 대표작이라 하지만 필자는 그의 심경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싸우는 소1, 2>를 손꼽고 싶다. 100주기 전시에도 출품된 <싸우는 소1>은 미술치료를 받기 전 그림이고, <싸우는 소2>는 치료 과정 즈음 정신과 의사 유석진 선생이 이중섭에게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중섭은 성베드로병원에 입원하여 정신과에서 그림 치료(미술치료)를 받았다. 그림 치료는 현상과 관념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일체의 현실의 수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자신의 모호한 감정들을 내면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자기를 이해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시대적 아픔의 분단과 이별을 담은 대립 구도

  〈싸우는 소1〉은 1954년 이중섭이 가족이 일본으로 떠난 후 홀로 지내며 제작한 것으로 두 마리 소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는 대립구도이다. 왼쪽의 소는 파란색이고, 오른쪽의 소는 황소이다. 파란색 소는 오른쪽 뒷다리만 땅에 살짝 딛고 나머지 세 다리는 모두 공중에 떠 있다. 꼬리는 하늘로 치솟아있고 머리는 황소를 향해 구부리고 있다. 황소는 파란 소의 공격을 버티는 것처럼 오른쪽 앞다리를 쭉 펴고 왼쪽 앞다리를 살짝 뒤로 하고 있다. 뒷다리는 왼쪽 앞다리 옆에 있고 오른쪽 뒷다리는 도화지 끝부분인 땅의 기저선에 맞닿아 있다.
  소싸움의 유래는 경남 일대에서 봄부터 여름내 소먹이는 아이들이 소싸움을 붙이고 힘센 소를 뽑아서 마을 대항 소싸움을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 농경문화가 정착한 시대에 목동들이 망중한을 즐기기 위한 즉흥적인 놀이로 시작하여 차차 그 규모가 확산되고 부락 단위 또는 씨족 단위로 번져 서로의 명예를 걸고 가세(家勢) 또는 족세(族勢) 과시의 장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는 우리 민족의 협동단합을 제압하기 위하여 이를 폐지시켰으나 그 명맥을 조심스레 이어온 터에 광복 후 부활되었다. 이처럼 〈싸우는 소1〉은 현실에서 키기 위해 서로 대립하고 있는 소처럼 분단된 조국의 현실과 가족의 이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보색대비를 통한 내적갈등의 표출

  색은 감정의 표현으로 <싸우는 소1>은 중심소재를 보색인 빨간 바탕에 파란 소와 황소를 그려 강조하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불안한 마음과 싸우고 있는 자신의 심경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담겨있다.
“정말 외롭구려. SOS…SOS…SOS… 하루빨리 건강하고 다사로운 기쁨의 편지 보내주기 바라오…”
홀로 지내는 고된 삶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파란색은 균형과 조화의 색으로 신경 흥분을 가라앉히며, 창조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노란색은 유아적이며 희망적인 색으로 두 마리 소를 보색대비로 표현한 것은 일본에 있는 가족에 대한 마음과 한국에 남아 예술가로서 삶을 지키며 있는 자신의 감정을 표출한 것으로 느껴진다.

위) <싸우는 소1>, 1954~1955, 종이에 유채, 17×37cm, 리움미술관 소장
아래) <싸우는 소2>, 1955, 종이에 유채, 27.5×41.5cm, 서울미술관 소장

쇠약해진 정신상태를 반영한 일그러진 선

  선은 지성(知性)을 나타낸다. 보통 불안 상태에서는 짧은 선과 삐뚤삐뚤한 선, 명확하지 않은 선으로 표현된다. 〈싸우는 소2〉는 가슴 속의 깊은 불안과 갈등, 현실에 대한 좌절 등 여러 감정이 녹아 있다. 파란 바탕에 같은 색의 두 마리 소가 서로 얽혀있고, 구분하기 어려운 형태의 선으로 강한 테두리를 나타내어 소가 두 마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왼쪽의 소는 오른쪽의 소를 뿔과 앞발, 뒷발로 제압하고 있다. 오른쪽의 소는 바닥에 처박혀 쓰려져 있다. 뒷다리는 허공에 들려 있고, 꼬리는 하늘로 치켜 있어 공중에 떠 있는 모양이다. 반대편 소는 오른쪽의 소를 완전히 짓누르고 있다.
이 작품은 성베드로병원 정신과에서 미술치료를 받으며 회복하는 과정 중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마음을 담은 그림을 그렸기 때문인지 퇴원할 정도로 호전되었다. 병원에서 퇴원할 무렵 성베드로병원에서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는 현실과 내면의 갈등을 회복하고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갈망이 잘 드러나 있다.
  “11월 24일, 12월 9일에 부친 편지 고마웠소. 대구, 서울의 여러 친구의 정성 어린 보살핌으로 이젠 건강을 완전히 되찾아, 이제 일주일쯤 뒤에는 성베드로병원에서 퇴원하오. 안심하기 바라오. 너무나 그대들이 보고 싶어 무리를 한 탓이라고 생각하오…”
  기울어진 자아는 의식과 무의식 혼돈 속에서 균형을 잡았고 이중섭에게 예술은 분열되었던 정신세계를 하나로 합치는 수단 되었다. 예술은 고통을 잘 견디게 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두 작품에서 느낀 것처럼 이중섭은 그림에 열정을 쏟아 자신의 심경과 현실을 상징주의 화풍으로, 홀로 견디고 있는 외로움과 불안의 감정을 표현주의 화풍으로 그의 예술세계에 반영하였다. 예술가는 감정의 고양과 승화를 작품에 담아 완성시키므로 예술적 경험의 가장 경이로운 특징은 아마도 어떠한 작품을 보고 눈물 날 정도로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힘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그의 작품을 그냥 그대로 느끼는 마음이 지금 내 마음이고, 그의 마음이라 생각된다.

이은주
명지미술치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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