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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자들의 시대
  • 손남훈 문학평론가
  • 승인 2016.10.17 23:40
  • 호수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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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로부터 벗어나 오직 자기 자신의 실존만으로 고독하게 신과 대면하는 인간. 키에르케고르는 그를 가리켜 ‘단독자’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단독자는 자신의 실존적 불안(즉 죽음이라는 인간의 한계상황)을 신을 통하여, 신에 의하여, 신과의 대면 과정을 통과함으로써 극복해내는 존재다.
  지금 이 땅에는 수많은 단독자들이 있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와 다르게 이들은 실존적 자기 고양과는 거리가 먼 매우 ‘세속적’인 이유로 타자와의 단절을 강요당했다는 점에서 키에르케고르의 단독자와 차이가 있다.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마시며, 혼자 노는 사람들. 5% 가까운 시청률을 자랑하는 TvN 드라마 <혼술남녀>에서 진정석(하석진 분)은 ‘혼술’을 즐기는 이유에 대해 회식은 감정 낭비, 시간 낭비, 돈 낭비라고 깔끔하게 정리한 바 있다.
  그렇다. 언론 고시, 사법 고시, 행정 고시, 언론 고시 등의 각종 고시와 구직 활동에 목매야 하는 청년들에게 ‘함께’ 모여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교류를 행하는 시간은 낭비이자 사치다. 내가 누군가와 함께한 그 시간이 재빨리 혼밥을 하고 다시금 고독하게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는 구직경쟁자에게는 나보다 한 걸음 더 빨리 구직의 문을 열 수 있게 하는 단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연애 또한 사치인 건 마찬가지다. 공명(공명 분)은 곤히 잠든 박하나(박하선 분)에게 입맞춤하려다 말고 “이건 아니지. 이건 반칙이야. 합격할 때까지 좀만 기다려요 쌤”이라 말하면서 그만두고 심지어 동영(김동영 분)은 여자 친구 주연(하연수 분)의 헤어지자는 문자 메시지에 답하면서 “진작 놓아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무기력하게 자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솔직한 감정 표현은 ‘낭비’이며 20대의 빛나는 연애는 ‘사치’라 생각해야 나는 비로소 ‘취뽀’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어르신들이라고 단독자의 삶으로부터 자유로울까. 최근 개봉한 이재용 감독의 <죽여주는 여자>는 고독사 대신 누군가에 의해 죽게 되기를, 그리하여 누군가가 나의 임종을 지켜주기를 자청하는 노인의 이야기가 주된 테마다. 젊은이들이 N포 세대가 되어 미래에 절망한다면, 노인들 또한 자식들에 대한 기대 뿐 아니라 최소한의 인간적 예우 또한 포기해야 하는 절망 세대일 수밖에 없다.
  오랜 경제적 불황과 허약한 사회복지제도, 겉으로는 민생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정치권력자들의 태도가 이처럼 젊은이 뿐만 아니라 어르신들의 소박한 생활까지 앗아버린 것이다.
  물론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시공간적 제약 없이 상호 소통이 가능하게 된 사정 또한 굳이 누군가와 더불어 시공간을 공유를 할 필요가 없게 된 현상을 가중시킨 이유 중 하나로 지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혼밥·혼술족이 관계 맺음과 소통을 포기한다고 단정하는 것은 다소 유보사항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혼자서만 생활을 영위해야 한다면 이는 진정석이 말한 바, “노량진은···살아남아야 하는 전쟁터”이고 각자도생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학원이나 고시원 근처에서 오늘도 혼밥하는 고시생들에게서 세월호 이후 자신의 생명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정언명제의 그림자가 언뜻 비치는 것을 보았다면 지나친 망상일까. 그것이 망상이 아닌 까닭은 경주 지진 이후 더 이상 우리의 안전은, 사회적 안전뿐만 아니라 실존의 안전까지도 정부가 ‘완벽히’ 방기하고 있음을 너무나 실감나게 확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진정석의 말 “상관없다. 날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도. 평생 나 혼자 이렇게 퀄리티 있게 살면 되니까”가 단독자들의 유일한 삶의 방식이라면 키에르케고르는 우리 시대의 이 많은 세속적 단독자들을 가리켜 무어라 말할까.

   
손남훈 문학평론가

손남훈 문학평론가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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