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시선 효원소묘
당사자만 아는 얘기
  • 이광영 간사
  • 승인 2016.10.03 12:57
  • 호수 1530
  • 댓글 0

  워낙 오랜만이다. 지면에 글을 얹는 것은 물론, 학교의 풍경조차 낯설다. 발이 닿지 않은 수개월 간 변한 것이 많다. 가뜩이나 적응이 쉽지 않은데, 신문사 내부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두통이 밀려온다. 조소를 띌만한 내용임에도 웃음이 쉬이 나오질 않는다. 너무나도 빤한 사실이 부정당하고 있다는 소식에 한숨부터 내쉰다.
  무릇 언론은 사회를 감시하고 비판한다. 사실을 전달함으로써 독자들의 올바른 판단을 돕는다. 대학 언론도 별반 다를 바 없다. 대상이 상이할 뿐이다. 지역사회나 문화, 대학사회를 바라보지만, 주안점을 두는 곳은 학내다. ‘우리 학교’에 대한 사실들을 전달하고 분석하며 비판한다. 그것이 곧 독자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저널리즘 개론서에서나 나올 법한 원론적인 얘기를 떠들자니 민망하지만, 나름의 이유는 있다. <부대신문>은 독자를 위해 존재한다는 빤한 사실을 당연히 여기지 못하는 이들의 존재 때문이다.
  이들의 사연은 <부대신문>의 미묘한 위치에서 기인한다. <부대신문>의 발행인은 총장이다. 언론사를 주간하는 교수와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도 존재한다. 편집국장을 비롯한 기자들은 모두 학부생으로 꾸려졌다. <부대신문>이 주창하는 3주체, 즉 학생과 교수, 직원이 모두 신문발행에 관여하는 셈이다. 그들과의 관계를 파고들면 더욱 복잡해진다. <부대신문>의 예산은 국가재정과 등록금으로 구성된다. 발행승인은 주간교수와 교직원의 손을 거쳐 총장을 통해 이뤄진다. 대학언론의 존재가치가 가장 빛났던 학생운동 당시를 떠올린다면, 궤를 함께 한 총학생회를 무시할 수 없다. 같은 학생이라는 동질감 또한 마찬가지다. 결국 주요 취재대상과 모두 재정적·구조적으로, 또 감정적으로 미묘한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네들의 사고가 기어이 직접적인 행동으로 나타났다. 고정적으로 취재할 수밖에 없는 어느 대표집단은, 자신들을 비판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기자들을 대놓고 멸시한다. 또 다른 집단은 편집국에 전화를 해 소리를 지르며 불만을 토로한다. 웃어넘기지 못할 충격적인 경우도 있다. 기사의 오류를 약점 삼아 인심 쓰듯 거래를 제안하는 이의 존재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기사의 오류는 오롯이 편집국의 잘못이기에, 취재원과 독자들에게 사과하고 정정해야 마땅하다. 허나 이를 빌미로 언론을 이용하려는 행태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언론탄압이라는 말이 그저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다.
  미묘한 위치와 미묘한 관계가 그들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할 수는 없다. <부대신문>은 독자들을 위해 존재한다. 특정인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무어가 됐든 언론으로 하여금 그네들을 비판할 권리를 박탈하지 못한다. 신문을 제작할 때, 구성원들은 학생이 아닌 한 사람의 기자다. 편집국은 지면구성에 있어 엄연히 독립된 언론기구다. 신문 발행에 있어 이는 권리가 아닌 의무다. 핍박당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모두가 당연시하는 사실이라 생각했건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다분히 원론적인 얘기만을 늘어놨다. 당연하기에 따분했고, 고로 필자 역시 다소 고통스러웠다.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던 스스로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와중에도 이 글로 말미암아 또 다른 사태가 발생할까 우려된다. 다섯 번의 칼럼이 남아있다. 고통이 반복되면 고문이라던데, 심란하다.

이광영 간사  press@pusan.ac.kr

<저작권자 © 부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광영 간사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