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시선+
떠오르는 개헌 논의, 새로운 미래를 그리다
  • 김민관 대학부장
  • 승인 2016.10.03 12:55
  • 호수 1530
  • 댓글 0

‘지금은 87년 체제를 극복해야 할 구조적 전환기다’. 제19대 국회 정의화 전 의장은 자신의 퇴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1987년, 새로운 사회에 대한 국민들의 뜨거운 열망을 바탕으로 개정된 현행 헌법은 ‘87년 체제’라는 이름 아래 30여 년 동안 한국사회의 근간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87년 체제에 이별을 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다시 한 번 구조적 전환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는 주장은 어떤 이유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리고 그 전환은 어떤 모습으로 실현되게 될까.

 

실패를 거듭해온 개헌 논의

개헌의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1997년 대통령 선거(이하 대선)과 2002년 대선 과정에서 개헌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일명 ‘원포인트 개헌’ 카드를 꺼내들었다. 원포인트 개헌은 <대한민국 헌법>(이하 헌법) 제70조만을 수정하는 것으로, 대통령을 4년 중임제로 변경해 국회의원 총선거(이하 총선)과 대선을 동시에 치르자는 취지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월 대국민특별담화에서 ‘민주적 역량이 성숙한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단임제가 추구했던 장기집권의 우려는 사라졌고, 오히려 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며 ‘임기를 4년으로, 그리고 1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게 한다면 국정의 책임성과 안정성을 제고하고, 일관성과 연속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원포인트 개헌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권주자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현 대통령)는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일갈을 남겼다. 서울시 이명박 전 시장(전 대통령) 역시 ‘경제 살리기에 힘을 쏟아야 할 시점에 개헌 논의로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며 반대했다. 그렇게 원포인트 개헌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2007년 대선에서 당선된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개헌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라며 임기 말 다시 개헌 이야기를 꺼냈다. 대선과 총선이 겹치는 2012년이야 말로 개헌의 적기라는 말도 나왔다. 물론 임기 만료를 앞둔 대통령이 내세운 개헌은 추진되지 못했다. 대신 대권주자들이 화답했다. 당시 후보자 신분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후 4년 중임제와 국민의 생존권적 기본권 강화 등을 포함한 개헌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 역시 4년 중임제 개헌을 공약으로 삼았다.
하지만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에도 개헌은 이뤄지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의 개헌 시도에 ‘올해는 다른 생각 말고 경제를 회복시켜야 한다’며 도리어 제동을 걸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제19대 국회는 임기만료를 맞이했다.

2016년, 개헌론에 불이 붙다

현재 제20대 국회는 그 어느 때보다 개헌 추진 의지가 강한 편이다. 제20대 국회 내 ‘개헌추진 의원모임’의 가입자는 180명을 넘어섰다. 제20대 국회 사무총장으로 임명된 더불어민주당 우윤근 전 의원은 제19대 국회 ‘개헌추진 국회의원모임’의 간사를 지냈고 <개헌을 말하다>라는 책까지 출간한 ‘개헌 전도사’다. 올해 10월 중으로 국회 개헌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내년에 국민투표를 진행하겠다는 로드맵도 나왔다. 원외에서는 여야 원로 150여 명이 ‘나라 살리는 헌법개정 국민주권회의’를 출범시켰다. 출범식에는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대표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 △충남 안희정 지사 △경기도 남경필 지사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 등 여야 잠룡들이 참석해 힘을 더했다.
그러나 상황이 녹록치만은 않다. 농림축산식품부 김재수 장관 해임 파동으로 국회가 파행을 겪으면서 개헌 논의는 사실상 설 자리를 잃었다. 우윤근 사무총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한번 보기로 했는데 당분간 말을 꺼내기 어렵게 됐다’며 ‘개헌 논의에 불똥이 튈까봐 상당히 걱정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청와대도 여전히 개헌에 소극적이다. 지난 4월 박근혜 대통령은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지금 이 상태에서 개헌을 하게 되면 경제는 어떻게 살리느냐’고 말했다. 경제 회복 집중을 이유로 개헌 논의에 제동을 걸었던 2014년과 달라지지 않은 인식이다.
현 시점에서의 개헌 자체가 안고 있는 논란도 있다. 임기 단축의 문제다. 개헌에 따라 통치체계가 바뀔 가능성이 높은 만큼 대통령과 국회의원 중 한쪽은 잔여 임기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총선과 대선이 함께 치러졌던 2012년이 개헌의 적기로 꼽혔던 것도 이 같은 문제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었다. 신평(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구체계를 남겨두고 새 헌법을 가동하도록 개헌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제12대 국회의원들의 임기는 1년 단축됐다. 반면 잔여 임기를 유지할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장영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부형태 변화 때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새로 뽑아야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제헌국회 때 헌법 제정 이후 국회의원들을 새로 뽑지 않은 것을 예시로 들었다.

개헌 통해 통치체계 개선 나서야

대다수의 개헌론자들은 개헌을 통한 통치체계의 개선이 가장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행 헌법은 일부 내각책임제적 요소가 가미됐지만 기본적으로 대통령 중심제인 시스템이다. 여기에 5년 단임이라는 임기체계가 더해지며 집권 초에는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이 몰리지만 임기 말에는 극심한 레임덕을 겪는 일이 반복됐다. 지난 7월 14일 전직 국회의장과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치·사회·종교 분야 원로 30여 명은 기자회견을 열고 ‘1987년 이후 우리가 선출한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으로 시작해 식물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쳤다’며 개헌을 촉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이에 따라 개헌 논의는 크게 두 가지 길로 향하고 있다. 하나는 대통령을 4년 중임제로 변경하는 흐름이다. 이를 통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중간평가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유능한 대통령에게는 장기적인 정책 수행을 보장해주겠다는 취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원포인트 개헌이 대표적이며, 현재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이정현 대표 △서울시 오세훈 전 시장 등이 이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지난달 29일 ‘경제성장과 경제정의’ 특강에서 ‘예전부터 4년 중임제를 주장했다’며 ‘이원집정부제와 내각책임제는 국내총생산 5~6만 달러, 통일이라는 두 가지 조건 이뤄지기 전까지는 무리다’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다른 한 쪽은 통치체계를 바꾸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책임제 개헌론이 대표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데 방점이 찍혀 있다. 이원집정부제는 권한을 대통령과 총리에게 분산하는 형태이며, 내각책임제는 대통령을 아예 없애거나 상징적인 국가원수로 남기고 의회에서 선출된 총리에게 권한을 몰아주는 방식이다. 현재 △김무성 전 대표 △김종인 전 대표 △김부겸 의원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등이 주요 지지자들이다. 특히 김종인 전 대표는 나라 살리는 헌법개정 국민주권회의 출범식에서 ‘유력 대선 후보들은 강력한 권력의 유혹을 버리지 못하고 4년 중임제를 제시하지만, 이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더 크게 만들 수 있다’며 ‘권력욕에 갇혀버린 정치인이 문제의 근본을 외면하고 제시하는 조삼모사의 미봉책’이라고 4년 중임제 개헌론을 비판하고 나섰다. 우윤근 사무총장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독일의 헌법학자 칼 뢰벤슈타인의 ‘대통령제가 미국 국경을 넘는 순간, 민주주의에 대한 죽음의 키스로 변한다’는 말을 인용하며 권력 분산형 개헌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미국을 제외한 모든 대통령 중심제 채택 국가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개헌을 통해 △지방분권 강화 △사법 개혁 △국민의 기본권 확대 △변화한 사회상과 가치 반영 등을 이뤄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우선 현행 헌법에서 지방자치제에 관해 기술한 부분은 단 4문장에 불과하다. 수십 년 동안 지속된 중앙집권주의의 영향이라는 게 헌법학자들의 평가다. 작년 9월 한국헌법학회가 제출한 <지방분권형 헌법개정안 연구> 보고서에는 ‘과도한 중앙집권주의와 최소지방자치주의가 헌법적 차원에서 결탁해 모든 영역에서 중앙의 압도와 지방의 몰락이라는 비정상적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있지만, 이러한 현실을 교정하기에 현행 헌법이 너무도 무력하다’며 ‘이제라도 헌정사의 방향을 기능적 권력 분립과 공간적 권력 분립이 함께 작동하는 자치와 분권의 방향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기술되어 있다.
사법개혁도 중요한 이슈다. ‘제왕적 대통령’ 못지않게 ‘제왕적 대법원장’도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지난달 22일 더불어민주당 이춘석(법제사법위원회)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대법원장이 임명·제청·추천·위촉할 수 있는 보직이 16,000개 이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춘석 의원은 ‘사법개혁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막강한 권한을 일선으로 배부하는 방안부터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대법원장의 대법관 임명제청권과 헌법재판소 재판관 3인 지명권을 삭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임지봉(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회보>에 기고한 글에서 ‘대법관 임명제청권은 대법원장과 대법관 사이의 수평적이어야 할 관계를 수직화시켰다’며 ‘또 헌법기관 위원에 대한 지명권을 가지기 위해서는 대법원장 자신이 국민들의 선거로 뽑혀 민주적 정당성을 가질 것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이외에 국민참여재판의 헌법적 근거 마련이나 계엄 시에만 군사법원을 인정하는 방안 등이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거론되고 있다.
헌법에 새로운 사회상과 시대적 가치를 반영하고자 하는 열망도 높다. 동시에 개헌의 중심은 권력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보다는 보편적 인권의 보장이 되어야 한다는 시각도 힘을 얻고 있다. △정보화 △저출산·고령화 △다원화 등으로 사회의 형태가 1987년과는 크게 달라졌고, 보편적 인권에 대한 인식도 진전된 만큼 헌법이 이를 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국민’이 아닌 ‘인간’의 권리 △생명과 환경의 보호 △사회적 차별 금지와 소수자 보호 △경제적 평등 △아동·노약자의 권리 △개인정보의 보호와 정보접근권에 관한 규정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된다.

개헌만으로 끝나지는 않아야

한편 개헌 과정에서 사회적 제도 개혁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통치체계를 바꾸는 일에 있어 선거제도 개혁이 필수적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승자독식체제의 원인은 통치체계보다 선거제도에 있으므로 선거제도 개혁 없는 통치체계 변경은 ‘권력 나눠먹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태욱(한림국제대학원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권력구조를 개편하면 정말 승자독식체제가 무너지는 걸까?’라는 의문을 던지며 ‘정녕 승자독식체제를 혁파하자는 거라면 권력구조 개편은 선거제도의 개혁을 전제로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개헌은 신중하게,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이뤄져야 하며 이 과정에서 사회적 개혁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김종철(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권력구조를 바꾸는 문제는 신중하게 검토돼야 하지 시급하게 바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여야와 정파를 초월해 곳곳에서 개헌에 대한 요구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지금, 앞으로의 개헌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고 현실화 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김민관 대학부장  left0412@pusan.ac.kr

<저작권자 © 부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민관 대학부장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