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연구 그리고 논문. 인터뷰를 진행하던 기자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1982년 대학에 입학 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그의 목표는 여전히 그 세 단어로 정의된다. 대화가 오가던 중 그가 걸어온 세월의 원동력을 찾을 수 있었다. ‘멋있어 보여서’라는 다소 황당한 이유로 천문학을 시작했다는 한국천문연구원 대덕전파천문대 이창원 박사. 계속 이어지는 질문에 답변을 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확신과 신념이 담겨져 있었다.

 

△처음 천문학을 공부하겠다는 마음은 어떻게 가지게 됐나?
천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밤에 별을 관측하는 모습을 보고 멋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그러다보니 막연히 천문학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졌다. 처음에는 ‘달의 위상이 계속해서 바뀌는데, 뜨는 시간도 달라진다’는 아주 사소한 의문을 가지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고 나니깐 이러한 의문들이 모두 설명됐다. 물론 그런 것들은 기초적인 지식이었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무언가를 제대로 연구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졌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학부생으로서 학과 천문학 연구팀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이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천문학의 길을 걷게 된 것 같다.

△지구과학교육과 출신인데, 전공과 달라 어려운 점은 없었나?
1학년 때부터 천문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 길에 대한 확신도 가지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름대로 교수님들을 찾아가서 어떤 공부를 해야 할지, 어떤 준비를 해둬야 하는지 묻고 도움을 받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차피 공부를 할 것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 과정이 어렵고 외로웠다. 당시에 지구과학교육과를 다녔지만, 수업은 물리과에서 많이 듣게 됐다. 그래서 친구들과 시간표를 잘 맞추지도 못했다. 또 4학년 때는 교생실습을 하게 되어서 한 달간 학교를 비우게 돼 공부하는 데에 어려움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문에 어려움보다는 재미를 더 느낄 수 있었다.

△여러 학과에서 많은 수업을 들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천문학에는 어떤 학문이 필요한가?
천문학 속에서도 어떤 분야를 연구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천문학 시뮬레이션이나 이론을 연구한다면 수학적 지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나처럼 관측을 하겠다면, 수학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쓰는 논문만 하더라도 수학 공식이 들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어떤 논문은 방정식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다. 다만 개인적인 경험상 물리에 대한 공부는 중요하다. 연구하는 분야에 따라 수학을 공부하는 것은 달라지겠지만, 천문학의 기초가 되는 물리에 대한 지식은 필수인 것 같다.

△사실 기자도 천문학자를 꿈꿨던 적이 있지만, 돈을 잘 벌지 못할 것이라는 반대에 결국 접고 말았다. 과거에는 천문학에 대한 주위의 인식이 어땠나?
천문학자는 좋은 직업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월급도 남부럽지 않게 받는다. 별을 관측하고 연구하는 것이 취미인 나에게 이보다 더 좋은 직업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 부모님께 내 생각을 말씀드렸을 때 심한 반대에 부닥쳤다. 주변에서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발령을 받으면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때도 천문학자에 대한 인식은 비슷했던 것 같다.
특히나 내가 사범대학을 다니고 있었던 상황도 이러한 반응에 한 몫 했다. 내가 학교에 다니던 때에는 사범대학을 졸업하면 곧바로 임용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계속 공부를 하고 싶어 일반대학원인 지구과학과에 진학하게 됐다. 당시에는 사범대학에서 일반대학원으로 진학하면 임용포기서를 내야 했다. 그래서인지 주변 친구들은 일반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교육대학원을 많이 갔었다.

△대학을 다니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은 무엇인가?
그 시절은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 어떠한 책임을 지지 않고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용돈을 받으면서, 내 공부만 하면 됐다. 당시 여자친구와 연애를 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또한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 때, 도서관에서 내가 읽고 싶었던 책들을 읽고 집에 돌아가던 뿌듯했던 마음들. 그 당시 자유롭게 할 수 있었던 많은 경험들이 지금 연구를 하는 데에 있어 자양분이 된 것 같다.

△대덕전파전문대의 대장이라고 들었다. 현재 이곳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나
대덕전파천문대는 직경 13.7m의 전파망원경이 설치되어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전파관측소다. 이곳에서 나는 천문대를 총괄하는 것과 동시에 전파망원경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시설을 잘 관리하고 제도를 마련하여 국내외의 많은 천문학자가 이를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좋은 논문을 쓰도록 돕는 것이 내 의무다.
또한 미국 하버드대학교로 포닥(박사 후 과정)을 하던 도중 연구했던 ‘별의 생성 초기과정’에 대해 계속해서 파고들고 있다. 국내외의 여러 전파망원경을 통해 좋은 논문을 쓰고 새로운 발견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밖에 여러 연구소가 모여서 만든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학생들과 같이 팀을 이뤄서 연구하며, 그들이 천문학의 길을 걷는 데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곳에서 연구를 진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 논문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때 기분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 내 논문이 제대로 쓰여져, 논문 저널에 받아들여질 때 기분이 좋다. 특히 내 논문에 관심을 갖는 다른 학자들이 함께 연구를 하자고 제안할 때가 기억에 남는다.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
내가 한국에 와서 썼던 논문들이 포닥을 하던 당시 썼던 논문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에서 좋은 논문들을 계속 쓰는 것이 나의 목표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천문학 분야에서는 예전보다 훨씬 좋은 관측기기들이 생겨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칠레의 ALMA라는 전파망원경이 그 예다. 이러한 관측기기들을 이용해서 새로운 발견을 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70주년을 맞이한 우리 학교와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처음 내가 천문학의 길을 걷는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많은 걱정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선에 휘둘려서는 안된다. 어떤 사람들은 막연한 두려움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반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잘 계획해서 포기하지 않고 결국 해내는 사람들도 있다. 무슨 일이든 10년을 하면 그 사람은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학생들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갔으면 좋겠다. 그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어떤 길이든 생길 것이라고 믿고, 즐겼으면 좋겠다.
또한 지금까지 천문학을 연구하면서 느꼈던 것은 정말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학회를 가더라도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렇더라도 결코 기죽을 필요가 없다. 나는 나의 일만 해내면 된다. 거기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발견하면 된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항상 자부심을 가지고 살길 바란다.
부산대학교는 학생들이 믿을 수 있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부산은 정말 좋은 곳이다. 그러나 그곳에 있는 좋은 학생들은 서울이나 수도권으로 대학 진학을 하고 있다. 왜 그 학생들이 서울이나 수도권으로 대학 목표를 잡아야 하나. 학생들이 부산대학교를 믿고 들어와서 자신의 길을 뻗어 나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천문연구원 대덕전파망원경(TRAO)의 외관

 

대덕전파망원경의 내부. 관측을 할 때에는 돔형식의 외관이 완전 개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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