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의 겨울, 기차 안팎의 온도차는 컸다. 대입 면접을 위해 올라탄 기차 안에서 예상 질문지를 읽으려 했다. 그런데 계속 드는 잡념 때문에 몇 번 읽지도 못했다. ‘사람을 평가하는 일만큼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도 없는데’, ‘이렇게 예상 가능하고 형식적인 질문에 맞춰 내 19년 인생을 평가한다고…’. 그런 마음으로 면접에 임했으니 그 대학에서 떨어진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사람을 평가할 때는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해 다각도로 임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예시가 바로 ‘성과연봉제’다. 이는 천편일률적인 성과 기준에 따라 평가를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연봉까지 차등 지급하는 제도다. 현재 전국철도노동조합과 15개 노동조합은 이 제도의 도입을 반대하며 일주일 넘게 파업 중이다. 이들이 성과연봉제에 반대하는 가장 확실한 이유는 돈 앞에 놓인 사람을 가장 처절하게 만드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철도노동조합은 현재 파업에 돌입한 16개 노동조합 중 유일하게 불법 파업조직으로 규정됐다. 다른 직종과 달리 이미 성과연봉제가 도입됐기 때문에, 파업 근거로 인정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철도공사의 성과연봉제 도입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철도공사가 취업규칙을 통해 노동자들의 동의 없이 이 같은 제도를 마련한 것이다. 이 같은 행위를 눈감아 버리면, 다른 직종에서도 자신들처럼 소리 소문 없이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은 기를 쓰고 반대하고 있다.
  글을 쓰는 와중에 한숨 나오는 일이 또 벌어졌다. 철도 노동자들의 파업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보이자, 코레일이 이들을 대체할 인력으로 1,000명이나 더 채용할 계획을 밝힌 것이다. 비인간적인 대우에 반발하며 잠시 자리를 비운 사람. 그리고 그 자리를 일시적으로 메우는 사람. 인간과 노동에 대한 멸시는 어디까지 이어질까. 가장 처절한 마음이 드는 대목은 ‘합격자는 일용 기간제 신분으로 파업 종료 때까지 근무하며 최소 1개월 고용이 보장된다’는 부분이다. 이러한 조건에도 그 자리를 대신 채울 수밖에 없는 사람의 사정이 안타깝다.
  어쩌면 우리는 어릴 적부터 ‘성과’에 집착하도록 내면화됐을 지도 모른다. 유치원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칭찬스티커를 모을 수 있고, 그 스티커를 많이 모은 친구는 으스대며 보이지 않는 계급장을 차고 다닌다. 지금 그 친구의 이름보다 선명히 남은 것은 그 때의 아린 패배감이다.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길 배운 것이 아니라, 모든 행동을 단순히 한 가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귀결시켜 버리는 훈련이 그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내면화된 성과에 대한 집착을 떼버리려면, 시간도 필요하고 대화도 거듭 필요하다. 오랜 시간 동안 성과만능주의의 자기 암시를 지우고 행동 그 자체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할 때다.
  또 다시 추운 계절이 돌아오고, 파업에 돌입한 노동자들과 사측의 온도차도 점점 커지고 있다. 언제쯤 철도 노동자들이 인간적인 평가를 받으며 출근할 수 있나. 언제쯤 노동자들은 온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으며 퇴근할 수 있는가. 더 이상 이들의 출근이 잔혹해지지 않기 위해, 그 잔혹함이 다른 노동자들에게 전이되지 않기 위해 더 큰 목소리를 내야하지 않을까.

신지인 편집국장amigo@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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