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에 보면 “천시(天時)가 지리(地利)만 못하고, 지리가 인화(人和)만 못 하다”(공손추 하)라는 말이 있다. 전쟁을 할 때 기상조건이나 질병 등은 지세의 험준함이나 토지의 비옥함 등에 미치지 못하고, 그러한 지리적 유리함 역시 사람들 사이의 화합만 못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듯한 말이야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맹자는 유학자가 아닌가? 유학자라면 대체로 천명이니 천시니 하는 것을 앞세우기 마련이다. 맹자 스스로 “하늘의 뜻을 따르는 자는 살고, 거스르는 자는 죽는다”, “내가 노나라의 임금을 만나지 못한 것은 하늘의 뜻이다. 사람의 뜻이 아니다” 등의 말에서 그런 자세를 보이지 않았는가? 그런데 ‘하늘의 뜻과 통한다’는 백성의 화합은 또 그렇다 쳐도, 하늘의 뜻이 지리적 유리함보다도 못하다고 한 까닭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마 이래서일 것 같다. 천시가 전쟁의 승패에 미치는 힘은 막강하다. 온갖 준비를 갖추어 대규모의 원정을 했지만 생각지 못한 폭우나 폭설로 좌절되거나, 전염병 때문에 이길 수 있는 전쟁을 이기지 못했던 경우는 셀 수 없이 많다. 기원전 5세기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의 페리클레스는 ‘우리는 해군이 강하고 적은 육군이 강하다. 그러니까 우리는 성문을 닫고 철통같이 지키면서 해군으로 적의 무역을 차단하면 머지않아 우리가 이긴다’라고 보았다. 그것은 올바른 전략이었으나, 페리클레스 자신의 목숨까지 앗아가는 전염병이 아테네를 습격하는 바람에 물거품이 되었다. 수나라의 대군이 고구려를 쳐부수지 못하고 살수대첩에서 무참히 패배했던 데도 예상 밖의 폭우가 한몫했다. 세계를 대부분 정복하다시피 했던 몽골군이 고려군과 연합해서 일본을 침공했을 때, 그들을 좌절시킨 것은 일본군이 아니라 ‘가미카제(신의 바람)’라 불리게 된 폭풍이었다.
그러나 그런 천시는 사람이 어찌해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소설 속에서 동남풍을 빌었다는 제갈량도 뜻하지 않은 폭우로 숙적 사마의에 대한 화공이 실패하자 “일을 꾸미는 쪽은 사람이고, 일을 이루는 쪽은 하늘이다”며 한탄하지 않았던가. 지리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험준한 산이나 비옥한 토지가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조건은 아니지만, 그런 산에 성을 쌓고 그런 토지에 저수지를 만듦으로써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화는? 이것은 백 퍼센트 사람에게 달려 있다. 좋은 정치를 하느냐,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할 수 있느냐, 자발적인 애국심을 북돋울 수 있느냐는 오로지 사람에게 달려 있다. 그러기에 맹자가 천시보다 지리를, 지리보다 인화를 중시하라고 한 게 아닐까.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뜻에서!
얼마 전 경주에서 일어난 진도 5.8의 지진이 전국을 뒤흔들었다. 물리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뒤흔든 것이다. ‘한반도는 지진 안전지대’라는 믿음이 깨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편안히 디디고 있는 땅바닥이 마구 흔들리고 갈라져 버리는 지진이란 예측할 수 없고, 피할 수도 없기에 더욱 무섭다. 그 정신적 후유증도 크다. 1755년에 발생한 리스본 대지진은 유럽인들의 종교에 대한 자세를 바꾸었다고 한다. 유서 깊은 교회가 수도 없이 무너지고, 수많은 죄 없는 사람들의 목숨이 덧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정말 신이 계신다면 이런 일을 허용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많은 사람의 뇌리에 떠오르고, 따라서 신앙보다 이성을 중시하는 태도가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예부터 큰 지진을 ‘천명이 다했다는 신호’로 여겼는데, 1556년 산서성에서 대지진이 일어나 무려 83만 명이 숨지자 명 왕조에 대한 불만과 비판이 하늘을 찔렀다. 그래서 만주족 청나라의 세상으로 쉽게 바뀔 수 있었다고 한다. 1923년에 발생한 일본의 칸토 대지진에서는 분노와 원망을 돌릴 희생양으로 몰린 재일 한인들이 무참한 학살을 당했다.
이때 우리가 맹자를 기억해야 할 이유는, 천시인 지진을 미리 알거나 막을 수는 없으나 그 대비와 수습에는 최선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지진 소식과 함께 주무부서인 안전부의 안이한 대처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정부의 원전 중시 정책이 자칫 상상도 하기 싫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공포, 세월호와 메르스 이래 불거진 정부의 수습 능력에 대한 불신, 지금부터라도 이를 해소하고 인화에 힘을 쏟아야 한다.

함규진
서울교육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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