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석
과학교사

섹시한 외모가 주목받던 시대를 지나 이젠 뇌가 섹시한 사람들이 인기를 끄는 시대가 왔다. ‘뇌섹시대-문제적 남자’를 비롯해 뇌를 활용해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고품격 예능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뇌가 섹시하다는 것은 수학능력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거나 지능지수가 높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번쩍이는 아이디어나 뛰어난 문제 해결력을 지녔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기업에서도 화려한 스펙을 지닌 사람보다는 최근에는 뇌가 섹시한 인재들을 뽑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페르마나 가우스, 아인슈타인이나 뉴턴처럼 위대한 수학자나 물리학자는 모두 뇌섹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중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는 ‘페르미 문제(Fermi Problem)’를 비롯해 탁월한 어림 능력으로 여러 가지 일화를 남긴 것으로 유명한 뇌섹남이다. 페르미는 병상에 누워 있을 때 떨어지는 링거액 간격을 보고 링거액의 유속을 측정했다고 하며,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핵폭탄 폭발실험을 할 때는 노트에서 찢은 종잇조각을 떨어트려 핵폭탄의 폭발력을 어림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페르미는 학생들에게 ‘시카고에는 몇 명의 피아노 조율사가 있을까?’와 같은 소위 ‘페르미 문제’를 냈다. 당시와 달리 오늘날에는 인터넷을 이용하면 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겠지만 페르미가 단지 조율사의 수를 구하기 위해 이 문제를 낸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한 학생의 추론과정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을 통해 페르미는 “우주의 크기와 역사를 고려해 보면 지구 외에 문명을 가진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외계인은 목격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들 어디에 있는 거지?”라는 ‘페르미 패러독스’로 불리는 의문을 제기했다.
단순한 추론에서 던진 이 문제는 미국의 천문학자 프랭크 드레이크가 ‘드레이크 방정식’으로 발전시키게 된다. 드레이크 방정식은 우리와 통신할 수 있는 은하계 내의 문명의 수를 구하는 방정식으로 각 항의 값 중에서 어느 값도 정확하게 알려진 바 없다. 하지만 각 항에 대한 어림값이 정확해질수록 실제 값에 근접할 수 있게 된다. 정확한 측정 도구와 방법이 등장하기 전까지 과학자들은 빛의 속력과 같은 많은 값을 어림할 수밖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드레이크 방정식과 같은 페르미 문제도 애초 어떤 값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 범위를 점차 좁혀가고 있다.
페르미 문제는 논리적인 사고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순수한 논리 문제와 달리 임기응변과 문제에 대한 직관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다양한 상황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판별하기에 좋다. 그래서 기업에서 입사시험 문제로 페르미 문제를 내기도 하는 것이다.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 컴퓨터가 등장하는 시대에 어림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컴퓨터가 있어도 여전히 어림과 같은 추론 능력이 필요하다. 대략의 계산을 통해 결과를 짐작하는 어림을 통해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을 찾고, 정확한 수치는 컴퓨터를 구해 얻으면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어림은 활용할 수 있는 근거나 증거를 바탕으로 근삿값을 구하는 사고활동으로 수학적 능력이나 과학적 배경지식이 값을 추정하는 데 사용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엉터리 어림짐작으로 일을 해 건물붕괴나 대형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또한 정부에서는 한진해운 사태처럼 피해 규모를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대충 어림짐작해 일 처리를 하는 바람에 혼란만 가중시키고 피해를 눈덩이처럼 커지게 만들기도 했다. 물론 정부의 추정이 빗나간 것은 한두 건이 아니라 어림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분명 정부 요직에 오르기 위해서는 총명한 뇌섹남(녀)이었을 것인데 지금은 어찌하여 모두 뇌썩남(녀)가 되어 버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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