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시험 응시 시즌이 오면 그 경쟁률이 화제다. 30대1, 50대1은 약과다. 지역에 따라서는 250대1 경쟁률도 존재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부쩍 공무원 시험 응시를 준비하는 이가 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높은 경쟁이 공무원 시험에서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모든 도전에 치열한 경쟁이 있고 취업 시장은 꽁꽁 얼어붙은 느낌이다.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안정적인 미래설계 준비는 ‘하고 싶다’는 ‘Hope’의 심정보다 ‘해야 한다’는 ‘Must’의 의지가 더욱 어울려 보인다. 모두가 비장하다.
  나는 공대를 졸업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공계 진학자는 그 출신만으로도 취업이 보장된 느낌이었다. 취업 시장에서 이과 출신은 마치 ‘성골’처럼 행세했고 문과 출신은 ‘6두품’인 양 작아졌다. 무엇이 그리도 죄송한지 ‘문송합니다’라는 말도 생겨났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취업민국’은 ‘거대한 전환’을 맞이했다. 어려워진 취업에 이공계 출신의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부쩍 늘어났다. 졸업유보나 도피성 대학원 진학도 더 이상 남 이야기가 아니다. 출신을 떠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대학 진학의 지상목표가 되었다. 이제는 ‘학송합니다’라는 표현이 더 알맞은 사회다.
  한때 대학은 ‘지식의 상아탑’이라고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더욱 발전된 지식을 전수하기 위한 교육기관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바뀐 환경에 적응하여 사피엔스(Sapiens)가 진화하듯 변화된 사회에 대학도 적응한 모습이다. ‘지식의 상아탑’은 어느 순간 ‘취업대학원’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목적조차도 이루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배움을 위해 학교에 다니는 것이 욕심인 사회가 되었다. 학생으로서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슬프다.
  뚜렷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변화는 필요하다. 꼭 ‘지식의 상아탑’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마음 편히 도전할 수 있는 곳’ 정도는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공대에서 사회대로 ‘전향’했다. 25살에 마음 잘 맞는 사람과 창업도 해보았다. ‘해야 해서(must)’가 아니라 ‘하고 싶어(hope)’ 도전했다. 그냥 막연히 생각만 해오던 일을 실제로 해본 것이다. 배우고 싶은 공부도 하고, 하고 싶었던 일도 해보니 즐거웠다. 그리고 행복했다. 모두가 그랬으면 좋겠다.
  현실은 슬프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현실에 적응한 모습은 더 슬프다. 지금은 계급 사회가 아니다. 우리는 ‘성골’일 필요도, ‘6두품’일 필요도 없다. 우리는 자유인(Freedman)이다. 도전이라고 해서 취업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모든 걸 버리고 꿈만 좇을 필요도 없다. 그냥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직접 해보는 것이다. 내 이야기가 모두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정답이었다.
  독일 정치가 비스마르크는 정치를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비스마르크는 이런 마음가짐으로 정치에 임했으리라. 대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가능성은 어디에서든 열려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대학도 ‘가능성의 예술’이어야 한다고. 나도 이런 자세로 대학에 임하고 있다. 

한성무(정치외교학 석사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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