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은 그 존재감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부경근대사료연구소 김한근 소장이 취재 당시 한 말이다. 부산은 일제강점기 일본의 요새사령부가 위치해있는 군수물자 수송도시였다. 하지만 현재 그 역사를 알고,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부산의 일제강점기 유적들은 일제의 잔재이고 지역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부정적 인식과 무관심 속에서, 조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취재를 하던 필자는 문화유적의 가치를 보는 시선의 차이를 느꼈다. 역사 전문가들은 태평양 전쟁이 일어났던 당시 중요한 지역이었던 부산의 군사 시설이 중요한 가치를 지닐 수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한 구청의 문화관광과 직원은 “그 유적은 문화재로서 별로 가치를 가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단정지어버렸다. 하지만 이 말을 듣고 ‘왜 제대로 된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유적의 가치가 없다고 바로 판단해버릴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청에서는 조사가 되지 않는 것에 대해 예산 부족을 이유로 들었다. 전화 통화 당시에는 그 이유가 합리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정말 지역의 문화 유적으로서 보존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낀다면 예산 부족이 문제가 될까?’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어떤 문제에 대해 정말 중요하게 인식을 하면 그 필요성에 따라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나간다. 그렇기에 지자체가 나서 국가기관에 지역의 문화유적이 가지는 역사적 가치에 대해 잘 설명한다면 충분히 조사가 이루어 질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부산의 네거티브 문화재는 대부분 일제강점기 군사시설 유적이다 보니 보안상의 이유로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중구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이영근 씨의 증언이 존재하지만 그것이 체계적인 자료로 기록되지는 못했다. 이영근 씨는 일제강점기부터 태평양 전쟁 일본패망이후 미군이 주둔한 시점까지 중구에서 있었던 일련의 일들을 겪었고, 아직 기억할 정도였다. 그는 방공호에서 미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창문으로 불빛을 새어나가지 않도록 경비원의 감시를 받은 일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던 도중, 필자는 이내 마음이 급해졌다. 이영근 씨는 취재 도중 일제강점기의 경험들을 정확히 기억해 내는데 시간이 걸릴 정도로 이미 나이가 많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이런 일제 강점기의 산 증인들이 존재할 때 빨리 찾아내어 유적의 옛 위치나 과거 사건들의 기억을 반영해 문화유산에 대한 조사를 마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이러한 네거티브 문화재에 대한 무관심하거나 부정적 인식은 많이 개선된 상태이다. 하지만 여전히 일각에서는 ‘일본군 잔재이다’, ‘창피한 역사이다’라며 일제의 문화유적을 없애자고 주장하고 있다. 찬란한 유산은 민족의 우수성과 같은 좋은 것을 남기지만 부정적인 역사는 다시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다. 현재 일본의 총리인 아베는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고스란히 지닌 증거의 문화유산을 보존하자는 것이 옳지 않은 행위일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 신채호 선생이 한 말이다. 다시 반복 되서는 안 될 역사라면 일단 후손들이 그 역사에 대해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부정적인 역사에 대한 책임을 부인하는 사람들에게 증거를 들이밀어 상황을 극복해나가야 하는 것이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김미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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