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과다. 그것도 수식과 공식으로 대부분을 해결하는 공대생.
글 쓰는 법이라곤 중학교 국어책에서만 본 나에게 우연히 글을 쓸 기회가 찾아왔다. 맨 처음 부탁을 받았을 때에는 몹시 당황했다. 어떤 주제로 글을 전개해 나갈까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마감날짜는 코앞으로 다가오고 머리는 뒤죽박죽일 때, 군대 휴가 나온 친구가 부산을 올 일이 있으니 얼굴이나 보자고 연락이 왔다. 유일하게 만나기로 한 날에만 약속이 없었던 상황과 글을 부탁받았던 일이 겹치면서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느낌이 왔다. 그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이고 이런 기회를 준 ‘우연’에 대해 내 생각을 펼치는 글이다.
우연이란 무엇인가. 우연의 사전적 정의는 ‘아무런 인과 없이 의도치 않게 일어난 일’이라 적혀있다. 도서관에 앉을 자리가 없다가 갑자기 자리가 생긴다거나 지폐를 떨어뜨린 곳이 하필 하수구여서 다시 돈을 주울 수 없는 상황이 있듯이, 좋든 싫든 우리의 인생에 우연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연을 그저 그렇게 넘길 것이다. 나 또한 그랬었다. 그런데, 이런 우연을 바라보는 관점을 조금만 바꿔보면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이 과연 우연으로 보일까? 이러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 필자의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나는 재수를 했다. 고3 수능은 이미 역대급으로 망쳤고 뭘 해야 하나 아무 생각도 없던 나였다. 그런 나에게 신문에 꽂혀있던 기숙학원 전단지를 보게 되었고 기숙학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기숙학원에서의 힘들었던 재수 후에 학교를 수능 점수에 맞춰서 들어왔다.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지만 수능에서 평소 실력발휘를 못 해서 강제로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고 ‘취업이라도 잘하자’라는 생각에 점수에 맞는 공대에 진학하게 되었다.
앞에 내용만으론 내가 보기에도 생각 없이 막 산 인생처럼 보인다. 하지만 기숙학원 생활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과 습관을 만들어주었고, 점수에 맞춰 들어온 학과는 내가 평생에 걸쳐 하고 싶은 새로운 꿈을 찾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누군가는 ‘결국 운이잖아’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상황에서 누구보다 절실했기 때문에 내 자신에게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저런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믿는다. 기숙학원에선 미친 것처럼 공부했었고, 입학 후에는 ‘앞으로 뭘 해먹고 살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었다.
‘진인사대천명’이란 말이 있다. 필자는 한때 좌우명으로 삼을 만큼 저 말을 좋아한다. 앞에서 말했던 내가 우연을 바라보는 관점과 자연스레 이어지기 때문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고 기다리면 우연이 자연스레 내게 올 것이라고 믿으니까.
결국 필자는 ‘우연도 인과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주어진 일에 감사하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 좋은날이 온다’라는 다소 상투적으로 보이는 말이 이 글을 통해서 내가 생각하는 ‘우연’이라는 의미이다. 우연은 앞으로 수없이 많이 찾아온다. 매번 우리에게 찾아오는 우연을 아무 의미 없이 넘기지 말고 기쁘게 맞는다면 이왕 사는 인생 좀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우연히도 글을 쓸 기회를 얻은 평범한 공대생이다.
김두현(전기컴퓨터공학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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